[더 리포트] [스토리 창고]는 전설, 민담부터 동화, 고전, 최신 소설에 이르기까지 창작자에게 영감을 줄 모든 이야기를 담은 창고입니다. -편집자 주

오늘은 아이의 시선으로 이데올로기의 비극을 담은 윤흥길의 <장마>입니다.

사흘 내내 비가 내렸다.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는 비였다. 한국전쟁은 치열했다. 서울에 살던 외할머니가 시골에 있는 동만이네 집으로 피난을 왔다. 친할머니는 안사돈끼리 잘 지내자고 했다. 외삼촌은 육군 소위로 전장에 나갔다. 친삼촌은 인민군 공산당에 가담한 소위 ‘빨갱이’이다. 

외할머니는 일본 대동아전쟁 때 남편을 잃었다. 손가락이 빠지는 꿈을 꾼 다음이었다. 이번에는 이빨이 빠지는 꿈을 꾸었다. 아들을 잃을 전조라 확신하는 할머니를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외할머니의 육감은 유별났다.

꿈을 꾼 며칠 후 외할머니는 아들이 전사하였다는 통지를 받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는 빨치산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남편과 아들을 잡아먹은 년’이라는 자책감은 그녀를 극악스럽게 했다. 아직 아들이 둘이나 남아있는 사돈에게 얹혀있는 자신은 욕된 사람이었다. 친할머니가 이 소리를 듣고 노발대발했다. 두 사람의 갈등으로 집안은 팽팽한 긴장에 휩싸였다.

빨치산 대부분이 소탕되고 있는 때라 가족들은 삼촌이 죽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친할머니는 ‘살아 돌아온다.’는 점쟁이의 예언을 믿는다. 그이가 점지해준 날 아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예언한 날이 지나도록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실의에 빠져 있는 친할머니. 그 때 난데없이 구렁이 한 마리가 동네 아이들의 돌팔매에 쫓기어 집안으로 들어온다. 그걸 본 할머니는 졸도한다. 아들대신 구렁이가 들어온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집안은 온통 쑥대밭이 된다.

외할머니는 아이들과 외부인들을 쫓아버리고 감나무에 올라앉은 구렁이에게 다가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아무런 반응이 없자 할머니는 나무 아래에 앉아 머리카락을 불에 그슬린다. 그 냄새에 구렁이는 땅에 내려와 대밭으로 사라져 간다. 외할머니는 구렁이를 친삼촌이라 믿고 저승길로 인도한다. 그 후 두 할머니는 화해하고 일 주일 후 친할머니가 숨을 거둔다.

 장마가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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