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포트] [스토리 창고]는 전설, 민담부터 동화, 고전, 최신 소설에 이르기까지 창작자에게 영감을 줄 모든 이야기를 담은 창고입니다. -편집자 주

오늘은 산동네 사람들의 힘들면서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 위기철의 <아홉살 인생>입니다. 

'높은 산꼭대기로 누추한 살림을 실은 리어카가 삐걱거리며 올라가고 있다. 가장인 아버지를 따라 한 쪽 눈을 잃어버린 엄마, 초등 3학년 나, 1학년 여동생이 따라간다. ‘서울에 집을 샀다.’고 해서 기대를 안고 왔지만 무너질 것 같은 판잣집이다. 차라리 셋집이라도 전에 살던 부산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홉 살 여민이는 이렇게 서울로 입성했다.

학교에 갔더니 ‘월급기계’인 담임선생님이 있었다. 무기력하고 신경질 많은 선생님을 일컫는 별명이었다.

그의 덕을 본 사건이 있었으니 이른바 ‘전국미술대회’였다. 여민이 그림이 최우수상을 탄 거다. 담임선생님은 그림을 고르기조차 귀찮았다. 여민이는 놀고 싶은 생각에 대강 그려서 먼저 냈다. 그걸 대회에 내보낸 게 당선된 사건이었다.‘피카소 저리가라.’하는 추상성을 인정받았다. 사실은 덜 마른 물감이 흘러내려서 기괴한 느낌을 주었던 거다. 제목인 ‘꿈을 꾸는 아이’는 아침에 학교에 늦는 동생이 답답해서 ‘꾸물대는 아이’라고 쓴 게 철학적인 제목으로 둔갑했다. 그런 느닷없는 행운은 여민이를 잠시동안 스타로 만들었지만 곧 일상으로 돌아왔다.

당찬 여민에게도 감당 못할 아이가 있었으니 같은 반 우림이었다. 우림이는 여민이를 좋아했지만 표현은 참 독특했다. 여민이는 도저히 그 아이의 은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여민에게 사랑은 너무나 어려웠다.

누나와 사는 신기종, 그 아이는 엉뚱하지만 신기한 얘기를 잘했다. 주정뱅이 아버지를 자신이 죽이고야 말겠다던 검은 제비, 뭐 하는지 모르게 살고 있다가 혼자 죽음을 맞은 토굴할매, 비 오는 날 나타난 다리 밑의 고양이눈 물귀신. 자기 세계 속에 갇혀 살다가 혼자 떠난 골방철학자...이들은 여민이의 어린시절을 살찌웠던 사람들이었다.

성장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민에게 산다는 일이 단순치 않다는 걸 보여주었다. 기쁨과 슬픔, 낭만과 고통, 좌절과 사랑, 증오의 감정 따위는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위기철의 분신 여민이는 ‘이담에 커서’ 멋진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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