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 오랜스키 위튼스타인 지음 | 안희정 옮김 | 서민 감수 | 다른

[더 리포트=박세리 기자] 사고와 질병으로 입원한 환자의 동의도 없이 인체실험을 강행한 사건이 있다. 20세기에 벌어진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다.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지원 아래 진행된 비밀 과학 연구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직전 나치가 핵무기를 개발 중이라는 사실을 입수하고 미국의 과학자들이 원자 폭탄을 제조하는 목표로 진행됐다. 그러나 당시 과학자들은 사람의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방사능 양의 정도를 몰랐고 스태퍼드 워렌 대령이 이와 관련한 실험을 지휘했다.

최초의 원자 폭탄을 만들기 위해 질주하던 과학자들은 안보를 위해 환자를 실험체로 삼았다. 1945년 3월의 어느 날 미국의 건설 노동자 케이드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팔다리가 부러진 채 인근 육군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지만 의사들이 부러진 팔다리를 맞추기 시작한 건 3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케이드의 몸에 몰래 주입한 과량의 플루토늄이 충분히 자리 잡을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 케이드이 뼈 표본을 수집했고 충치가 있던 치아 15개를 뽑았다. 턱뼈에서도 표본을 얻는 등 자신들이 주입한 방사능이 케이드의 몸에 얼마나 많이 잔류하는지 분석했다. 같은 해 실험자는 17명이 더 있었다. 대부분 수리공, 수의, 철도 승무원 같은 노동자 계층이었다.

가장 어린 실험 대상자는 4세 소년 시미언 쇼였다. 암 치료를 핑계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미국으로 데리고 왔지만, 시미언은 단 한 번도 암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의사들은 암 치료 대신 플루토늄을 주입했고 고통스러운 실험을 진행했다. 시미언은 1년도 안 되어 사망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생명윤리가 실종된 인체 실험의 역사를 낱낱이 공개한 <나쁜 과학자들>(다른.2014)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인류를 위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진행된 충격적인 사건이다. 임상시험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과학의 위대한 발견이라는 미명아래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고통받은 부끄러운 민낯임은 분명하다.

책은 근대의 인체 실험부터 줄기세포 연구 논쟁까지 들여다보며 위대한 발견 이면에 숨겨진 생명윤리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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