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포트] 정치권력의 입맛에 따라 한 나라의 예술과 예술작품에 대한 가치 판단과 트렌드가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북한의 경우다.

이 같은 사실은 <북한 소묘의 역사적 변화에 관한 연구-A Study on the Historical Change of the Drawings in North Korea>(김형완 북한대학원대학교, 2019)에 의해 밝혀졌다.

문제의 예술 장르는 미술의 소묘다. 소묘란 연필(혹은 목탄)으로 사물의 형태를 그리는 기법으로, 대개 미술에 입문할 때 첫 과정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기초과정이긴 하지만, 미술 장르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결코 작지 않다. 예컨대 대학입시에서도 소묘는 당당히 수채화,유화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논문의 목적은 역사적 분석을 통한 북한의 권력과 소묘의 역학관계 규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간략하게 그 역사를 알아봐야 한다.

북한에서 국보로 지정되었다는 박창룡 작가의 ‘몸소 병사의 소묘화첩을 보아주시며’(2006년)
북한에서 국보로 지정되었다는 박창룡 작가의 ‘몸소 병사의 소묘화첩을 보아주시며’(2006년) (사진 김형완 블로그)

북한이 건국되기 이전의 미술인 ‘항일혁명미술’에서는 이미 원시적인 형태의 소묘 작품들이 창작되었으며, 북한이 건국된 이후에도 북한의 미술가들은 선전의 일환으로 많은 소묘 작품들이 나왔다.

또한 소묘를 통한 미술 교육과 훈련을 중요시하는 소비에트 연방의 미술 체계를 북한의 미술계가 수용한 이후, 1950년대 중반부터는 소묘가 북한 미술의 주요 훈련 수단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던 중 소묘가 뜨거운 이슈가 된 때가 있었다. 바로 채색화 논쟁 때이다. 1966년 10월 16일 김일성은 ‘非채색화를 북한 미술의 결함’으로 지적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소묘는 미술의 중요한 장르로 도약하는 기회를 잃었다.

그 후 소묘가 급부상한 계기가 있었다. 김정일의 소묘 평가로 인해서다. 2005년 김정일은 ‘황철진’이라는 병사의 연필화들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그해 5월 조선인민군 장성들과의 담화에서 소묘를 대중화하고 소묘 축전을 개최하라고 지시했다. 그 다음에 제1차 전국소묘축전이 열렸다. 이어 조선화와 유화에서만 허용되던 ‘수령형상회화’가 소묘로 제작되어 출품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최고지도자가 바뀜으로써 갑자기 소묘의 위상이 고공비행한 셈이다. 그런데 그 파장은 에상을 뛰어넘었다. 소묘 그림이 국보로까지 등재되었다는 것이다.

논문 저자 김형완 씨는 “과거에 소묘를 고평가하는 것이 김일성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이제는 소묘 장르를 저평가하는 것이 김정일에 대한 도전이 되었다며 “국보가 된 소묘 작품은 북한의 미술 행사인 전국소묘축전에 출품된 것들”이라고 밝혔다.

보통 국보 등록은 제작 연대가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북한에서는 현 시대의 작품 역시 국보 등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2018년에 열린 제7차 전국소묘축전에서는 미사일 개발을 주제로 한 소묘 작품이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는 북한에서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예술 역시 정치의 도구로 쓰이고 있음을 드러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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