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현장] 매일 숱한 사건과 사고가 벌어지는 지구촌. 그와 달리 우리네 보통의 하루는 그저 소소하기만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 일상 중 어느 한 순간은 소중한 추억이 된다. 작지만 의미있는 사연을 소개한다.

오늘은 1시에 첫 일정이 시작된다. 지금 시간은 12시. 집에서 꾸물거린 결과다. 평소같으면 걸어갔을 텐데, 시간이 조금 애매하다. 일하는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50분 정도 걸린다. 헐레벌떡 걷기보다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낮 시간이라 버스에는 빈자리가 많다.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신영복 선생의 '담론'을 꺼내 펼쳤다.

버스 앞쪽 출입문 쪽에 실랑이 소리가 들린다. 버스 기사와 20대로 보이는 여자가 서로 언성을 높이고 있다. 여자는 카드를 카드 단말기에 찍었는데 인식이 안되는 모양이다. 버스 기사는 “인식이 안 되니까 다른 카드로 하거나 현금을 넣으세요”라고 말하고, 여자는 “원래 잘 되는 카드인데 이 버스만 안되요”라며 계속 카드를 단말기에 팍팍 찍어댄다. 저러다가 단말기가 부서지겠다. 아저씨는 짜증을 내고, 여자는 이제 출입문 앞자리에 앉아서 버스 단말기 문제라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이러면 책을 볼 수가 없다.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둘이서 저리 목청자랑을 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걸 계속 듣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다. 일어나서 버스 기사에게로 걸어갔다.

“기사님, 제가 대신 찍어도 될까요?” 기사님이 나를 쳐다보더니 말없이 카드 단말기에 1명 추가를 누르고 나는 교통카드로 결제했다. 카드 단말기에서 삑 소리가 난 후 기사와 여자는 말이 없다. 여자는 적어도 나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해야 하지만, 창피해서 그러려니 생각을 한다.

버스기사는 자신이 가지고 갈 돈도 아닌데, 그리 짜증을 낼 이유는 없었다. 아마도 다른 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여자로 인해서 터졌으리라. 감정이란 쌓이면 폭발하기 마련이다.

여자는 잔소리를 듣느니 버스에서 내리는 편이 나았다. 버스는 흔하니까. 여자는 자신의 카드가 이상이 없음을 주장하기 위해서 핏대를 세우고, 버스를 탈 권리가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여자와 기사는 손해도, 이익도 보지 않았다.

단지, 나는 1200원으로 고요한 버스를 구입했고, 도착지까지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임정섭 글쓰기 훈련소> 비우기 님(40대 남성).

글쓴이는 1200원의 투자로 고요한 버스를 구입했다지만, 실은 1200의 자비로 곤경에 처한 한 여성을 구출했다. 나아가 1200짜리 아이스크림 같은 행복을 버스승객과 글을 읽는 독자에게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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