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포트] 가는 봄이여 / 새 울고 물고기 눈엔 / 어리는 눈물 (바쇼)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다. 작가 바쇼는 지식인이라면 한 번 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바쇼의 제자 중에 여성작가가 있다. 치요조(千代女)가 주인공이다. 일본의 극히 드문, 그리고 가장 유명한 여성 하이쿠 시인 중 한 명이다.

논문 <치요조(千代女) 하이쿠와 그 미학-Chiyojo’s Haikus and its Aesthetics>(유옥희,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2012)는 그녀의 시를 분석한 글이다. 일본 <가가노치요 전집(加賀の千代全集)>(1983)에 나온 시를 다루었다.

치요조는 누구길래 연구대상일까. 한국인이 일본 시인, 그것도 여류시인을 연구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터. 치요조는 딱 한 번 화제를 모은 적 있다.

손순옥 중앙대 일어학과 교수가 쓴 <조선통신사와 치요조의 하이쿠>(한누리미디어) 때문이다.

이 책에는 치요조와 한국의 흥미로운 인연을 소개했다. 에도막부 시대였던 1763~64년 조선통신사(정사 조엄)가 일본에 갔을 때, 치요조가 족자 6폭과 부채 15자루에 총 21구의 하이쿠를 써서 조선통신사에게 바쳤다는 것이다.

손교수는 이를 두고 "사절단의 일행 중 일본의 서민문학인 하이쿠를 이해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며 "물질적 선물보다 정신의 표현인 시를 선물로 택했다는 것은 조선을 문화적 이상국으로 존중했다는 증표“라고 설명했다.

일본 목판화에 새겨진 치요조. 우물 옆에 서 있다. 물통을 감은 나팔꽃을 바라보고 있다.
일본 목판화에 새겨진 치요조. 우물 옆에 서 있다. 물통을 감은 나팔꽃을 바라보고 있다.(사진 위키피디아)

치요조가 쓴 가장 유명한 하이쿠는 나팔꽃이라는 시다.

morning glory! / the well bucket-entangled / I ask for water

나팔꽃! / 물통 얼키설키 감아 / 나 물 좀 먹으면 안 될까

손 교수는 “아침 일찍 밥 지을 물을 길으러 우물가를 찾은 여인이 두레박에 휘감긴 나팔꽃 줄기를 발견했을 때의 감정을 단시로 읊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치요조는 7세에 하이쿠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17세 때, 일본 전역에서 매우 인기있는 작가가 되었다.

그녀의 하이쿠 세계에 대해 앞의 논문 저자 유옥희는 ‘생명에 대한 찬미와 여리고 작은 것들의 존재에 대한 연민(あはれ), 그리고 불심(佛心)’으로 요약했다. 단순한 찬미나 연민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존재의 생멸(生滅)현상을 불심으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평이다.

치요조의 일생이 그 작품을 뒷받침한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 부모와 살다가 머리를 깎고 불교도가 되었다.

한 가지 덧붙일 이야기. 치요조는 조선통신사에게 바친 하이쿠 21구를 따로 한 장의 종이에 써서 직접 표구해 가보로 전했다고 한다. 섬세한 감성으로 자연을 사랑했던 시인이 이국 손님과의 각별한 인연을 잊지 않은 셈이다. 아마도 대표시 '나팔꽃'도 포함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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