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포트] 미에 대한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다. 마찬가지로 한 시대의 미인 기준 역시 사람들의 심미안을 반영한다. 미인을 그린 그림 역시 똑같다. 우리 역사에서 미인도는 조선 후기 미인도가 대명사가 되었다. 이 시대의 미인도 또한 조선시대 미와 미의식이 투영된 작품이다.

그런데 학계에 따르면 조선 후기 미인도는 중국과 일본의 교류를 통해 변모되었다고 한다.

논문 <조선후기 미인도와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 우키요에 미인화와의 관계성 고찰-A Study on the Effects of illustrations in popular literature of China’s Ming and Qing Dynasties on beauty paintings of the late Joseon Dynasty>(임미현, 호서사학회, 2018)은 이를 구체적으로 전한다. 

"중국 문학 독자의 증가와 함께 이루어진 소설 삽화의 대중적 파급은 문인, 화원이나 여항화가들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큰 자극을 주었고 조선후기의 회화양식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이와 마찬가지로 에도시대의 우키요에도 미인화가 성행했을 뿐만 아니라 대량생산이 가능해 조선에 직·간접적으로 유입되어 조선화단에 자극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논문의 연구 결과, 일본으로부터의 영향 추론은 일정부분 입증되었다. 유흥문화와 남녀의 애정행각 등의 소재와 장면구성, 인물배치와 자세, 시선처리 등에서 에도시대 우키요에는 물론 명·청 통속문학 삽화와도 유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신윤복의 미인도
신윤복의 미인도

또한 조선후기 미인도는 단독 미인도로 이행되는 과정이나 ‘무배경의 단독 여인입상’ 형식, 인물의 자세와 세부표현 등에서 우키요에 미인화와 공통적인 요소를 보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무배경의 단독 여인입상’이라 함은 무엇일까. 

<조선 후기 미인도 연구-A Study on Beauty Paintings of the late Joseon dynasty>(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2019)는 이 점을 더 자세히 다루었다. 논문은 “조선 후기 미인도의 실제 모델이 있는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사회문화적인 배경과 도상적인 특징을 함께 살펴보았을 때, 조선 후기 미인도의 주인공 신분은 기녀임을 알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녀 주인공이 미인도의 내용을 바꿔버렸다.

논문에 따르면 기녀는 조선 후기 미인도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꾸준히 풍속화나 기록화 속에서 그려져지다 점점 비중과 역할이 커져갔고, 결국 단독 제재로 발전되었다.

이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림 속 기녀의 모습이 완전히 심미화되고 에로틱하게 되자 내부의 남성 관람자 즉 남성 등장인물은 필요 없게 되었고, 점차 배경과 주변인물이 배제되면서 춘의적 감성의 기녀 단독 주인공인 조선 후기 미인도가 등장했다."

바로 앞에서 언급된 ‘무배경의 단독 여인입상’ 형식이다. 그리고 신윤복의 ‘미인도’가 등장하면서 조선후기 미인도의 한 전형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시대의 비슷한 그림과 달리 “기생의 영혼까지 그리려 했다”는 평(EBS 다큐)을 들을 만큼 사실적이다.

논문 저자는 “조선 후기 미인도는 근·현대 화단과 20세기 광고포스터나 엽서 속의 여성 이미지에도 영향을 주어 그 영향력과 파급력을 확인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마도 이런 지식을 알고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면 그 이전과 색다르게 느껴질 법하다. 여기서 알쏭달쏭 의문 하나. ‘그렇다면 과연 미인도 속 기녀가 그 시대의 미인의 표상이었을까.’ 오늘 날 연예인을 떠올리면 그럴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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