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광대 이야기를 다룬 영화 '왕의 남자'의 한 장면.
조선시대 광대 이야기를 다룬 영화 '왕의 남자'의 한 장면.

[더 리포트] 조선시대 과거시험 합격은 최고의 경사였다. 보통 3년마다 돌아오는 시험에 선비들은 목을 맸다.

과거에 급제하면 궁궐에서 잔치를 열어줬다. 소위 ‘은영연(恩榮宴)’이다. 또한 길거리에서 ‘유가(遊街)’라는 가두행진 행사를 열었다. 보통 3일 정도 실시되었다. 여기에 고향 지역에선 부모에게 예를 드리는 ‘영친의(榮親儀)’라는 행사도 있었다. 

보통 과거는 소과, 문과, 무과, 잡과의 네 종류가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원, 진사, 초시 시험이 있었고, 합격자 정원은 대략 700명 정도로 알려졌다. 조선시대에 급제자 환영연에는 광대의 동원이 필수적이었다. 광대들은 흥을 돋기 위해 구슬 던져 받기, 접시돌리기, 땅재주 등의 놀이를 펼쳤다. 

그렇다면 급제자들이 모두 환영연을 한다고 치면 엄청난 규모의 악공과 광대가 필요했다. 더구나 이 행사는 시대가 흐를수록 더욱 성대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러한 과거 급제자의 행사에 전국의 광대들이 자신들도 서울로 떼거리로 몰려들었다. 이 광경을 송만재(宋晩載, 1783∼1851)는 ‘관우희(觀優戲, 1843)’260)를 통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광대는 호남 출신이 가장 많으니(劇技湖南産最多) 말하기를 우리도 과거 간다네(自云吾輩亦觀科)’

지금으로 치면, 과거시험에서 술집 뿐 아니라 연예인이 낙수효과, 특수를 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연예인 섭외비는 누가 냈을까.

이와 관련 최근 <조선 유생의 문과 급제와 복식문화 연구-Yusaeng's Passing of Civil Service Examination and Costume Culture in the Joseon Dynasty>(안동대학교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2019)를 읽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논문은 과거급제 복식과 관련된 연구 중 하나다. 다시 말해 과거시험에 합격한 후에 벌인 유가 때 입은 의복에 관해 탐색했다.

이 행사 때 급제자는 복두⋅공복⋅야자대⋅흑화⋅목홀 등을 갖추어 입었다. 이 의복은 급제가 스스로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광대⋅재인들이 착용하는 복식(‘초립복’과 ‘전립복’) 역시 급제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행사에 놀아줄, 요즘 같으면 연예인의 의복 값을 급제자가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아마도 광대들 섭외 비용 역시 행사 주최자의 몫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어쨌든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과거는 조선조 고종 31년(1894) 갑오개혁과 함께 폐지되었다. 그때부터 관리등용에 새로운 시험이 실시되었다. 양반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시험을 보게 했다. 양반과 더불어 바야흐로 연예인에게도 호시절이 끝났던 셈이다.

저작권자 © 더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