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포트] 미술 전시관에 가거나 미술에 관한 책을 읽는 일 외에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바로 예술에 관한 전문가의 수다를 듣는 일이다. 

<예술이 되는 순간>(디자인하우스)이 그렇다. 이 책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 필립 드 몬테벨로와 저명한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가 예술 작품을 두고 벌이는 이야기 향연이다.

두 사람은 세계 유명 미술관을 여행했다. 르네상스와 고딕 조각 작품으로 유명한 바르젤로 미술관, 유럽에서 가장 풍부한 회화 컬렉션이 있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설명이 필요없는 런던의 영국 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순례 대상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책벌레들의 이목을 끄는 대목이 있다. 곧 필립 드 몬테벨로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필립은 1977년부터 2008년까지 31년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이끌어왔다. 해당 미술관의 산 증인이자 지휘자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규모와 내용 면에서 세계 굴지의 종합 미술관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에는 필립의 역할이 지대했다.

책에서 마틴이 필립에게 물었다.

“당신을 미술계로 인도해준 어느 특정한 순간이나 경험이 있습니까?”

이에 대해 필립이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이야기가 있으니 그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것은 나의 첫사랑으로, 사실 책 속의 여인이었습니다.”

필립이 말하는 그 여자는 다름 아닌 독일 나움부르크(동부 독일 하레에 소재한 도시) 대성당의 '우타 부인'이었다. 대성당의 서쪽 아프시스 당내 오른쪽 기둥에 서있는 입상 '에케하르트와 우타'로 알려진 인물이다.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그녀를 여자로서 사랑했습니다. 내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앙드레 말로의 <침묵의 소리>를 집으로 가지고 오셨습니다. 네 가지 색조로 멋들어지게 표현된 흑백 도판들을 훑어보던 내 눈앞에 우타 부인이 나타났습니다. (중략) 나는 지금도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나움부르크 대성당은 1249년부터 7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우타는 시간을 조금 더하면 1천 년 전의 여인이다. 책에는 흑백으로 된 우타 부인의 작은 ‘증명 사진’이 나와 있다. 이 사진을 확대했더니 놀라운 '미모'가 나왔다.

에케하르트와 우타 입상에서 우타의 얼굴을 확대한 사진

사진을 보면 몹시 묘한 인상임을 알 수 있다. 컬러로 보니 더 풍부한 표정을 볼 수 있다. 신기한 점은 각도에 따라 크기에 따라 얼굴에서 드러내는 이미지가 변모한다는 사실이다. 멀리서 보면 부은듯하지만, 가까이 보면 인상이 단호하다. 우아하고 이지적이다. 범접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다. 깃을 세운 모양새가 도도함을 더한다.

필립 관장은 이 여인을 두고 “높이 올라온 아름다운 깃과 부은 눈꺼풀을 가진 그녀는 마치 사랑의 밤을 보낸 듯하다“고 묘사했다.

가히, 한 남자의 진로를 결정지을 만한 인물이다. 중국 한자성어 중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이 있다.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이다. 지금 쓴 이 글을 보고, 미술계에 투신하려는 이가 있을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야말로 미의 선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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