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포트] 영국 그리니치의 국립해양박물관은 새 밀레니엄을 맞아 특이한, 대규모 전시회 'The Story of Time‘을 열었다. 주제는 ‘시간’이었다. 그리니치는 런던 교외의 지역으로 천문대로 유명한 곳이다. 즉 그리니치 왕립천문대는 그리니치 표준시와 세계 본초 자오선의 기점이며 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곳에서 뉴 밀레니엄 축하를 겸한 시간 전시회는 매우 뜻 깊은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이 전시회는 지금 볼 수 없다. 그러나 한 권으로 책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바로 <시간 박물관>(푸른숲)이다. ‘대표 저자’는 석학 움베르토 에코다.

이 책은 시간이 영향을 준 인간 생활의 전 부문을 다룬다. 달력과 시계부터 문명과 의례, 예술, 음악, 과학, 예언까지. 동시에 기계적 시간, 심리적 시간, 물리적 시간, 철학적 시간, 사회적으로 재구성된 시간이란 범주로 세계를 해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끈다.

시간은 지금 이 순간부터 우주의 역사, 영겁의 영원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토픽이다. 

여기 그 시간들을 그림 하나에 표현한 작품이 있다. 영국 화가 윌리엄 다이스William Dyce 1806~1864가 그린 <페그웰 만 : 1858년 10월 5일의 추억, Pegwell Bay, Kent - a Recollection of October 5th 1858 >이 그것이다.

페그웰 만 : 1858년 10월 5일의 추억.
페그웰 만 : 1858년 10월 5일의 추억. 그림 중앙 위쪽에 ‘도나티Donati’ 혜성의 흔적이 있다.

이 그림은 일종의 시간의 비밀을 봉인한 그림이다.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드리운 바닷가의 고적한 해질녘 풍경을 담았다. 계절은 쌀쌀한 가을. 장소는 영국 램즈 게이트 근처의 유명 휴양지 페그웰 만이다.

얼핏 보면 단순한 구도와 색감이지만 이 그림엔 3개의 시간이 담겨있다. 하나는 ‘지금’이다. 네 명의 남녀가 썰물로 드러난 바닷가를 거닐면서 조개껍데기를 줍고 있는 1858년 10월 5일인 것이다. 그림 정면에 있는 사람들은 윌리엄 다이스의 아내와 두 처제 그리고 아들이다. 원경 속 오른쪽 절벽 아래, 그림도구를 들고 있는 이가 있는데, 화가 자신이다.

두 번째는 천문학적인 시간이다. 그림 중앙 가운데 위쪽에 보면 긴꼬리의 혜성이 보인다. (원본으로 봐야 잘 보인다.)

작가가 해질녘을 선택한 것은 바로 낮과 밤이 교차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앞에서 말한 ‘지금’을 표현하기 어려우니.

이 혜성은 1858년 6월 2일 처음 관측된 ‘도나티Donati’ 혜성이다. 이 혜성은 10월 5일에 가장 밝게 빛나 육안으로 관측될 수 있었다.

혜성은 우주의 시간을 보여준다. 이 혜성은 2100년 뒤에야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계산 해보면 대략 서기 4000년 가까이 된다. 화가는 그림에 이 ‘광대한 시간의 무늬’를 새겼다.

마지막은 지질학적이 시간이다. 그림 뒤쪽의 우뚝 솟은 절벽은 오랜 지구의 나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절벽의 지층에는 수억 년이라는 영겁의 시간이 켜켜이 새겨져 있다.

1800년대에는 지질학에 관심이 높던 때였다. 유럽 상류층, 그 중에서도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야외에서 암석을 관찰하는 여행이 유행했다.

깎아지른 절벽이나 바닷가의 조개류가 단순히 감상용이 아니라, 지구의 역사를 읽은 과학의 대상이 되었다. 바로 이런 흐름이 그림에 반영된 것이다. <시간박물관>은 이를 다음처럼 의미부여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디아스의 그림 제목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는 지질학적인 시간과 천문학적인 시간의 장구함이 한자리에서 만난 짧은 한순간, 자기 인생의 특정 시간을 회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서 후세를 위해 보존했던 것이다. 264쪽

우리는 그림을 보고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을 본다. 하지만 윌리엄 다이스는 독자로 하여금 한 폭의 그림에서 세 가지 시간을 읽어내도록 했다. 이런 통찰력을 보여주는 그림은 흔치 않다.

윌리암 디아스는 그림에서 등을 구부려 조개껍데기를 줍고 있는 아내와 마흔 네 살이 되어서야 결혼했다. 그리고 불과 6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이 그림을 그릴 때가 인생의 황금기였다. 따라서 작가가 이 그림에 가장 담으려 했던 시간은 바로 단란했던 한 가정의 금쪽같은 ‘지금’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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