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포트] 우리 사회에는 이 세계가 나아갈 항로를 맨 앞에서 이끄는 지(知)의 최전선이 있다. 때때로 그 전선은 난공불락이어서 보통사람이 접근하지 못한다. [더 리포트]는 그 현장을 찾아 난해한 지식을 쉽고 흥미롭게 풀이해서 전해 준다.-편집자 주
포털 네이버는 <열린연단 : 문화의 안과 밖> 강연을 5년간 개최해 왔다. 연사는 우리 시대 석학들이다. 3월부터는 ‘삶의 지혜’를 주제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9일엔 ‘삶의 지혜’ 첫 번째 시리즈로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스타트를 끊었다. ‘삶의 지혜, 삶의 회로 그리고 그 너머’가 제목이다.
강연은 제목에 비해 내용이 어려웠다. 박사학위 논문을 읽는 느낌이랄까. 지적인 컨텐츠를 싫어하는 독자를 위해, 듣다가 포기한 관객을 위해 강연을 장시간에 걸쳐 리뷰했다.
강연의 시작은 ‘삶과 공부’였다.
첫 키워드는 삶의 지혜였다. 김우창 교수는 지혜의 정의를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해서 인생의 계획을 짜는 일’로 규정했다. 이어 ‘정보부’라는 특이한 단어 하나를 동원했다. 과거 정보를 수집하는 정부부처 ‘정보부’의 비유였다.
여기에서 도출된 ‘삶의 정보부’란 활용할 정보와 지식의 집적이다. 정보에는 재테크 정보, 안전 정보, 정치 정보 따위가 있다. 그런데 그 정보는 우리의 사고습관을 전술 또는 병법(兵法)적 사고에 익숙하게 만든다.
이는 자연스럽게 처세술로 연결되었다. 요즘은 처세술이 만연하는 사회다. 처세술이란 어떻게 처신해야 지혜로운지, 어떻게 행동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기술이다. 이는 그것이 필요할 만큼 우리 사회가 복잡다단하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넓은 의미로 보면 처세의 도나, 철학적 성찰까지도 좋게 말하면 처세술에 포함된다. 이어 여러 가지 처세술에 관련된 책이나 이론을 소개했다. 데일 카네기의 책 ‘친구를 얻고 영향을 얻는 법’(1930년 출간)과 명심보감, 채근담 등이다.
김우창 교수는 "인간의 지혜는 사물과 존재, 인간적인 실존적 직접성에 대응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밝혔다.
일단 우리시대 석학이 데일 카네기라는 다소 ‘자기계발’ 저자를 언급한 부분이 이채로웠다. 그와 별개로 책에서 소개했다는 말은 가슴에 와 닿았다.
“환심을 사려면 상대가 중요한 인물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한다.”(데일 카네기)
중국 고전 채근담에 나온 말도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나무라지 말고, 다른 사람의 감추어진 일을 캐내지 말고, 다른 사람의 묵은 잘못을 괘념치 말라.‘
다음 경구도 그렇다.
‘대나무에 바람이 불더라도 바람이 지나고 난 후에는 바람 소리 대나무에 머물지 않는다.’
김우창 교수는 이 문장을 두고 “수양이 된 사람은 사안이 있을 때 비로소 존재가 있음을 드러내지만, 사안이 사라지면 공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이번 강의와 관련해서 상당한 상징성이 있다. 앞의 데일 카네기 경구와 다른 점은 사물과 심성의 연결이다.
김 교수는 “인간의 심성의 기본자세는 관찰 또는 현상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이는 다른 사례에서 보이는 이해득실의 계략과 다른 근거가 도출 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현상학적 사고법’으로 규정했다.
자세히 말하자면, 현상학적 인식론은 사실에 기초하여 사물이나 현상 그 자체의 존재방식에 유의하는 것이다. 즉 삶에 대한 교훈은 현상학적 인식과 사물의 존재방식에 대한 확인에서 나온다.
이어 학문의 목적과 의미의 설명으로 강연은 계속되었다. 이 강좌가 삶의 지혜에 대한 내용임으로 학문과 떼어놓을 수 없다.
■ "인간의 삶은 존재론적 기초에서 촉발"
오늘날 학문을 한다는 것은 개인의 이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삶의 요령, 인생의 전략, 처세술과 연결된다. 대학에서의 스펙도 그 연장선상이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이 실용성과 공리성은 의미가 있으나 너무 강조하면 역설적으로 실질 목적을 바르게 이루어내기 어럽다”라고 말했다. 실용목적과 순수 진리 추구는 불가분 혹은 상호교환 관계라는 것이다.
김우창 교수는 “인생의 지혜는 자아중심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사물 전체 그리고 거기에 뿌리내리고 있는 인간존재의 진실”이라며 “참으로 타당한 처세술이 있다면 그것은 사물과 존재, 인간적인 실존적 직접성에 대응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밝혔다. 이 부분이 전 강의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인간의 지혜는 현실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은 존재론적 기초에서 촉발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기반인 현실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시간이다. 그러나 시간은 사건이나 기억에 의해 재조합된다.
이탈리아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세계 문법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이데거는 “시간은, 그것이 인간적인 의미를 갖는 한에서만, 시간화한다“라고 꿰뚫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어떤가. 유명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다음과 같이 통찰한다.
“현실은 오로지 기억으로만 이루어지고 기억은 세계의 무질서의 소산이다.”
시간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사회적인 요인이다.
김우창 교수는 삶의 단계와 관련해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의 인생회로를 장시간에 걸쳐 소개했다. 에릭슨은 삶에서 일정한 단계와 그 단계를 통한 인간 성숙의 문제를 연구 했다.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노년시절까지 삶의 경로를 여덟 개의 단계로 구분했다. 이 단계들은 그때그때의 연령대에 맞는 자기 형성의 과정을 말한다. 그는 각 단계에서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긴간이 가져야 할 모습을 ‘삶의 덕성’으로 설명했다. 그 덕성은 희망, 의지, 목적, 능력, 충심, 사랑, 배려, 지혜다.”
예를 들어 8단계는 지혜다. 정직하고 진실 되게 행동하면서 자신의 인간적 명예와 인격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상태다.
김 교수는 “에릭슨의 8가지 덕성은 삶에서 중요한 덕목임으로 우리가 늘 고민해야 할 주제”라고 조언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