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네그로스 섬에서 매년 10월에 열리는 마스카라 페스티벌. 시민과 관광객들은 축제를 상징하는 ‘웃는 가면’을 착용하고 축제를 즐긴다.
필리핀 네그로스 섬에서 매년 10월에 열리는 마스카라 페스티벌. 시민과 관광객들은 축제를 상징하는 ‘웃는 가면’을 착용하고 축제를 즐긴다.

[더 리포트] [知탐]은 '지식을 탐하다'라는 문장의 줄임말입니다.-편집자 주 

마스카라.

이 단어는 무슨 뜻인가. 아마 대부분 보통 사람은 화장품을 떠올릴 것이다. 사전적 정의로 ‘속눈썹이 짙고 길어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칠하는 화장품’ 말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쿠바란 국가를 떠올린다. 쿠바 작가 레오나르도 파두라(Leonardo Padura, 1955)의 <마스카라> 때문이다. 이 때의 마스카라(Masskara)는 화장품(mascara)와 철자가 다르다.

‘마스카라’(Masskara)는 ‘대중’, ‘군중’을 의미하는 영어 mass에 ‘얼굴’을 의미하는 에스파냐어 kara를 붙여 만든 합성어다.

파두라의 <마스카라>는 추리소설로 '사계 4부작' 중 가장 문제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내용을 알려면 배경설명이 필요하다.

쿠바 혁명은 신식민주의에 대항하여 미제국주의와 독재체제를 몰아낸 민족주의 혁명이었다. 혁명 후 급진적인 카스트로의 문화정책은 중남미 작가들의 혁명 소설 창작 열기로 이어졌다. 그러나 곧 표현의 자유와 예술적 상상력 사이에서 역류를 맞게 된다.

이를 대표한 유명한 말이 1960년대에 유행한 ‘혁명의 소설’과 ‘소설의 혁명’이다. 다시 말해 혁명 후 쿠바소설은 ‘역사소설’과 ‘바로크소설’로 구분되었다.

문학은 쿠바혁명 노선이 경직됨에 따라 ‘혁명의 소설’로 굳어졌다. 지식인들은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망명과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에 와서야 문학을 정치 선전의 도구로 전락시킨 혁명문학을 비판하는 외침이 나타났다.

이 때 등장한 젊은 작가들은 혁명문학이 정치적 이념에 치우쳐 예술정신을 기만하고 있다고 여겨 쿠바 문학, 특히 소설 장르의 혁신을 시도한다. 파두라가 그중 한 명이다. 본국에 남은 작가들 중 대다수가 혁명정부에 기여하는 창작 활동에 전념한 데 반해, 파두라는 철저한 감시망 속에서도 바로크적 작품 세계를 고수했다.

<마스카라>의 배경은 1989년 동구권 붕괴로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고, 내부적으로는 군 고위층과 정부 관료들이 부패에 연루되었던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던 쿠바 혼란기이다.

이 시기를 소재로 파두라는 쿠바 내 사회문제를 추리소설 기법으로 분석한 <마스카라>를 썼다. 마스카라는 앞에서 말한 대로 가면이란 뜻이다. 이 소설에서 제목 역시 그런 뜻이다.

'더위로 끈적끈적한 아바나의 밤, 한적한 공원에 연극의 여주인공 복장을 한 여장 남자가 빨간 스카프에 목이 졸려 숨진 채 강가에서 발견된다. 단서는 사체의 항문 속에 남겨진 동전 두 닢뿐. 섬세한 감성과 날카로운 추리력을 겸비한 베테랑 형사가 사건을 쫓는다. 살인범은 외교관. 그리하여 충격적인 가면의 비밀이 벗겨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면은 일종의 은유다. 많은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은유의 마지막은 쿠바 혁명정부를 지목한다. 다만 가면을 쓰지 않은 이가 있으니, 오직 살해당한 여장남자 로 대표되는 동성연애자들이다. 그들은 가면을 쓰지 않고 핍박을 받고 사는 계층을 대표한다.

마스카라는 오늘 날 우리사회의 가식과 허위로 얼굴을 가린 가면 쓴 지식층, 부유층, 정치인을 풍자하는 단어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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