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5천엔 권 지폐 속 이치요의 초상.(사진 위키피아)

[더 리포트] 일본 여성 작가가 100여 년 전에 우리나라 소설 '구운몽'을 필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사자는 일본 근대 소설의 개척자로 불리우는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1872~1896)다. 생전 14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그 중 ‘키재기’, ‘탁류’, ‘섣달 그믐날’은 서정 넘치는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치요와 우리나라 사이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나는 우리나라 실존 인물 '일엽(一葉)'에 관한 내용이다. <무정>을 쓴 춘원 이광수가 히구치 이치요의 이름을 따와 일제시대 신 여성 김원주에게 '일엽'이란 이름을 지어줬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치요가 쓴 일기에 '구운몽'을 필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는 점이다. '구운몽'은 조선 후기 숙종 때 서포 김만중이 지은 고대소설이다.

1887년부터 말년에 걸친 이치요의 방대한 일기는 일본 내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특정 작가가 특정 작품을 필사했다는 점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깊히 인상을 받았거나 매료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척 흥미로운 대목이다.

여기에 참고할 논문이 있다. <히구치 이치요 작품에 나타난 ‘구운몽’의 영향 = Influence of 'The Cloud Dream of The Nine' in works of Ichiyo Higuchi>((MUKAIKUBO SATOMI, 명지대학원, 2019)이 그것이다.

논문은 이치요가 어떻게 ‘구운몽’을 알고 수용하였는지와 두 작품 사이의 유사점을 비교했다. 논문에 따르면 이치요가 '구운몽'을 알게 된 계기는 스승(나카라이 도스이)를 통해서였다.

그렇다면 '구운몽'을 베껴쓰기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알려면 이치요의 삶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치요의 일생은 기구했다. 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후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생활고에 시달렸다. 어머니와 여동생 셋을 책임지기 위해 글을 쓰는 생계 형 문인이었다. 그 흔적은 이치요의 일기와 작품에 산재되어 나타나 있다. 그녀는 성 차별과 부조리한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단으로서 글을 썼다.

논문은 여기에 '구운몽'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고 본다. 이치요가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구운몽’ 속  여성들 모습을 동경했을 거라는 것이다.

논문은 “여성이 무엇을 하기는 어려운 시대에 이치요는 맨 앞에 서서 부조리함에 맞서 싸웠던 것”이라며 “이치요가 만든 길은 그 이후에 나오는 여성작가들의 희망의 빛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치요는 폐결핵으로 24세에 요절했다.

그 뒤로 100년이 훌쩍 지난 2004년, 일본의 5천엔권 지폐의 모델이 되었다.  

100여 년 전에 한 일본 여성작가가 남녀평등의 이상이 투영된 조선의 고전소설에 매료되어 문장을 필사했다는 사실은 매우 이채로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저작권자 © 더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