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티베트하우스에서 전시되고 있는 김경호 한국전통사경연구원장의 ‘감지금니 일불일자 화엄경 약찬게’ 작품.

[더 리포트] 우리 사회에는 이 세계가 나아갈 항로를 맨 앞에서 이끄는 지(知)의 최전선이 있다. 때때로 그 전선은 지식의 높이와 지리적 장애로 난공불락이어서 보통사람이 접근하지 못한다. [더 리포트]가 그 현장을 찾아 삶의 통찰과 지혜, 한 수를 전한다. -편집자 주

고려시대 하면 떠오르는 유물은 무엇일까. 대개 고려청자나 팔만대장경을 꼽는다. 팔만대장경은 16년에 걸친 대 역사 끝에 탄생했다. 그런데 팔만대장경은 사경(寫經-경전을 베껴 적는 일)이다. 종이에 먹으로 쓴 글(사경)을 놓고 글자로 새긴 것이다. 따라서 사경은 우리의 자랑인 목판과 금속활자 제작의 초석인 셈이다.

경전을 글로 옮겨 적는 일은 동서양에서 두루 이뤄졌다. 서양에서는 성경을 필사했다. 보통 필경이라고 말한다. 인쇄기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옛날, 경전을 베껴 쓰는 일은 다반사였다. 진리를 널리 알리고 후손에게 전하기 위한 필수작업이었다. 동양에서는 주로 불교경전을 필사했다.

서양에는 이 필경 그림이 매우 많이 전해온다. 흰 수도복을 입은 수도사가 의자에 앉아 성경을 들여다보면서 정성껏 글을 쓰는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경 그림’은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그저 상상을 통해서 이미지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어제, 우리시대 사경의 대가를 만나면서 그 상상이 실물이 되었다.

한국전통사경연구원 김경호(56)원장은 40여년째 사경에 관한 연구와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의 작업 과정과 작품을 보면 말을 잃게 된다. 그 일이 극한의 고행이기에 그렇고 그 작품이 궁극의 정교함이기에 그렇다.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김경호 원장.

옛 것을 오늘의 눈으로 보완하는 예술작업

사경은 승려에겐 학습과 수행의 방편이고, 신자에겐 공덕을 쌓는 일, 심신을 단련하기 위한 수양의 수단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 지은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43권(국보 제196호)이다.

그런데 이 사경이 오늘날 왜 중요할까. 소중한 우리의 전통을 되살리는 일, 단절된 불교예술을 복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경호 원장의 말이다.

“고려왕조는 대장경만도 금자대장경, 은자대장경, 목판대장경으로 10회 이상 사성했을 정도로 사경의 대국이었습니다. 원나라에 사경 전문가를 100명 파견한 적도 있지요.”

하지만 사경은 숭유억불 정책을 편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단절되었다. 일제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김경호 원장은 단절된 전통을 700여 년 만에 이어가고 있는 독보적 인물이다. 동시에 1000년 전의 불교 예술의 하나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김경호 원장의 ‘초전법륜도 만다라’ 작품.

김경호 원장은 그 작업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아 전통사경 기능전승자(2010년)가 되었다. 그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2000년 들어 이름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20여 차례의 개인전 및 초대전을 열었다. 미주한인이민 100주년 기념 초대전(LA), 한국문화원 초대전(뉴욕), 불교중앙박물관 개관 1주년 기념 특별초대전, 한국과 세계의 불경전 특별초대전,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 금사경 특별초대전 등의 굵직한 족적을 냈다.

김경호 원장의 사경이 더 각광을 받는 이유는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알려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서예는 문자를 소재로 하는 조형 예술이다. 그 조형미란 태세(太細)·장단(長短), 필압(筆壓)의 강약(强弱)·경중(輕重), 운필의 지속(遲速)과 먹의 농담(濃淡),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을 뜻한다.(지식백과) 사경을 하기 위해서는 서예에 능통해야 한다. 

필사, 즉 베껴쓰는 일은 요즘에도 한다. 예를들어 인쇄된 책의 글을 베껴 쓴다. 그러나 인쇄된 글자에는 앞에서 말한 조형미의 요소가 없다. 반면 옛사람의 글씨와 그림엔 매우 높은 예술적 경지가 담겨있다. 따라서 사경을 하려면 사경의 대상, 즉 원본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상을 잘 읽어내는 일만해도 상당한 수준을 요한다.

“불화(佛畵) 하나를 이해하려면 불교와 동양예술, 경전과 서예에 대한 지식과 조예, 미술 실기능력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미술품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조건이 요구되는 것이지요.”

김 원장의 사경은 단순 모사(模寫)가 아닌 재해석, 재창조 작업이다. 그 이유를 당사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문화재는 소중한 우리 유산입니다. 그러나 기술 면에서는 오늘날이 훨씬 뛰어나죠. 제 작업은 과거의 그 부족한 점을 지금 시대의 눈과 손으로 보완한 결과물입니다.”

작품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권제삼십일 변상'을 해설하고 있는 김 원장.

“미치지 않고서야...” 탄성이 절로

'김경호 표' 사경의 밑천은 불교 신앙과 서예다. 불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서예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다 우연히 박물관에서 고려전통기법인 금니(금칠)사경을 만났다. 사경은 금이나 은을 개어서 붓으로 그린다. 금니, 은니 하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사경에 매료된 그 때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사경 작업은 엄청난 인내와 땀을 요구한다. 김경호 원장의 사경은 ‘1mm의 예술’로 불린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려면 돋보기와 cm 자가 필요하다. 그래야 얼마나 세밀한 작업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mm 안에 5∼10개의 선을 그려 넣는 일이 다반사인데, 말이 그렇지 그런 식으로 초집중 상태를 몇 시간씩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작품에서 보여지듯 선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미치지 않고서야..."라는 탄성이 인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말을 확인하고 싶다면 포털 사이트에 나온 작업과정 동영상을 보라.)

그렇다면 왜 그런 작업을 할까. 

“사경 작업은 수행입니다. 고행이죠. 부처님 말씀을 한 자 한자 마음에 새기는 일이니까요. 또 하나는 찬란했던 불교 미술과 사경의 위대함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지요.”

김 원장은 이빨이 다 문드러졌다. 이유는 작업환경과 연관이 있다. 사경 작업은 고온의 공간에서 해야 한다. 섭씨 35도에서 40도 정도이니 사우나나 다름없다. 그래야 물감(은, 금 안료)이 마르지 않는다. 그 환경에서 초미세 세공작업을 한다.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찰나의 순간이라 할 짧은 시간까지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저절로 애꿎은 이를 악물게 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은 하루 8시간 씩 6개월 작업을 한 끝에 나온 걸작이다.

김경호 원장의 작품집 원본.
김경호 원장의 작품집 원본.

최근 김경호 원장의 작품은 뉴욕으로 건너갔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티베트하우스에서 '깨달음, 명상, 그리고 보살의 길(Illumination, Meditation and Bodhisattvas) 특별전'(3월 13일~5월9일)이 한창 열리고 있다. '뉴욕 아시아위크' 행사의 일환이다.

전시회엔 가로 29.6cm, 세로 42cm 크기 ‘10음절만트라(십상자재도)’와 ‘감지금니 일불일자 화엄경 약찬게’ ‘화엄경 보현행원품 변상도’ ‘초전법륜도 만다라’ 등 8작품이 손님을 맞고 있다.

티베트하우스는 그의 작업을 두고 "탐욕, 부주의, 무지 등이 없는 매우 깊은 명상의 상태에서, 수행자의 영혼이 응축된 최고의 예술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또 하나 예정된 큰 전시회는 중국 상하이의 유서 깊은 사찰 정안사에서 열리는 초대전(6월3일~ 18일)이다. 오프더레코드인데, 중국 명필 구양수의 서예 작품 중 하나가 처음 세상에 공개된다고 한다. 중국에서 김경호란 이름을 인정해주는 징표다.

김경호 원장의 사경에 대한 찬사는 이미 ‘세계화’ 하고 있다. 구글에서 ‘Sagyeong’ 또는 ‘Oegil Kim Kyeong Ho’ 검색하면 그의 작업 동영상을 만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조회수가 7백만 회에 이른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그는 말한다.

“세계인이 우리 전통 사경의 예술성과 우수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만드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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