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포트]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한 나라나 민족, 혹은 부족 구성원의 오랜 관습과 암묵적 동의하에 문자와 말을 주고받는다. 언어는 한 나라의 정체성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다. 똑같은 현상을 보고 나라마다 인식과 호칭, 사유는 각양각색이다.

이를테면 이메일 부호 ‘@’를 우리는 골뱅이라 부른다. 폴란드에서는 원숭이라 부르고, 러시아에서는 강아지라고 한다. 그리스에서는 새끼오리, 핀란드에서는 고양이 울음소리인 ‘야옹’이다.

외국인에게 ‘@’의 한국식 명칭이 골뱅이라고 설명해준들, 골뱅이에 대해 우리가 공유하는 독특한 생각과 수많은 경험을 어찌 알겠는가. 반면에 우리에게 골뱅이는 이메일 부호를 넘어, 술안주이고 술 취한 사람이며 알쏭달쏭한 모호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골뱅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 대신 ‘소라’를 뜻하는 일본 말 ‘사자에さざえ’를 쓸 테고, 따라서 일본의 생활과 문화를 담은 ‘닛뽄NIPPON식 사고’를 할 것이다. 이런 일을 상상하고 싶진 않겠지만 소설 속에서는 실제로 일어났다. 복거일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 1987)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1945년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지 않았다는 상황을 가정해서 쓴 소설이다. 소설에서 우리 국민은 모국어가 사라져 버려 일본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다. 주인공은 이러한 진실을 깨닫고 나와 언어, 나라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하나의 언어가 사라지면, 하나의 세계 또한 사라진다. 동, 식물의 멸종이 그렇듯, 언어도 한 번 없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이와 관련 사멸한 언어를 복원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인데, 배우는 앵무새들이고, 연출가는 실험정신과 통찰력으로 무장한 한 남자다.

미국에 사는 앵무새의 한 종류.
미국에 사는 앵무새의 한 종류.(사진 픽사베이)

1801년 독일의 유명한 지리학자 알렉산더 훔볼트(1769~1859)는 남아메리카 오리코노 강 유역을 탐사하고 있었다. 훔볼트는 독일의 자연과학자이자 지리학자이다. 1799년부터 1804년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탐사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지리와 기후 그리고 식물 전반에 걸친 내용을 책(코스모스)로 펴내 학술탐험과 자연지리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세계적인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이 쓴 언어에 관한 에세이 <언어의 작은 역사>(휴머니스트. 2013)에 나오는 흠볼트에 관한 일화다.

훔볼트가 길을 가던 중 최근 이웃 종족을 공격한 몇 명의 카리브 인디언을 만났다. 그들에 따르면, 주민을 모조리 살해하고, 그 종족이 기르던 앵무새 한 쌍만을 가져왔다고 했다.

앵무새는 습성대로 쉴 새 없이 재잘댔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살해된 인디언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훔볼트는 녀석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의존해 그 언어에 속한 단어를 가능한 모두 기록했다.

그로부터 거의 200년이 흐른 후, 레이첼 버윅이라는 미국 조각가가 그 언어의 복원에 도전했다. 그는 한 쌍의 미국산 앵무새를 구입한 다음 훔볼트의 기록에 나와 있는 단어를 앵무새에게 가르쳤다. 그러고는 녀석들을 나뭇잎과 정글의 소음으로 에워싼 큰 새장에 넣어 화랑에 전시했다.

분위기가 어우러지자 녀석들은 배운 대로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생소한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죽은 옛 언어가 살아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듣는 사람들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앞의 앵무새들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면 누구나 현장에 있는 사람과 뜻을 같이하며 박수쳤을 것이다. 앵무새의 기억에 의존해 사라진 언어를 보존한 지리학자의 인문정신과 그 자료에 의지하여 죽은 언어를 복원시킨 발상이 놀랍다.

지구상의 언어는 대략 6,000~7,000종이다. 하지만 100년 내에 전 세계 언어의 절반이 없어지리라는 게 학자들 예측이다. 언어가 사라지면 세상은 카오스가 된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과거엔 도처에 신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나 바위, 동물이나 태양을 섬겼다.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다. 그런데 누군가 ‘신’이라는 언어로 이름을 붙이자, 그것들이 길들여졌다. ‘신’이라는 언어가 발명되는 순간, 거룩하고 신성한 절대자로 통합되었다. 만약 언어를 파괴해 버린다면 세상은 또다시 질서 없는 곳으로 바뀔 것이다. 동시에 신이란 단어가 없어지면 절대자 역시 없어질지 모른다.

언어가 사라지면 존재가 사라진다. 그런 면에서 이 ‘앵무새 실험’이라는 생각의 혁신은 잃어버린 세계 하나를 되살린 경이로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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