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이런일이]<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김정운 지음 | 김정운 그림 | 21세기북스

[더 리포트=정미경 기자] “숟가락을 잡으면 뜨게 되고, 포크를 잡으면 찌르게 된다. 도구가 행위를 규정한다는 말이다. 도구는 의식을 규정하기도 한다. 아주 편하고 기분 좋게 앉을 수 있는, 뒤로 자빠지는 의자로 규정되는 의식이란 바로 ‘소통과 관용’이다.” (p.124)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21세기북스. 2016)에서 하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하루에 수십번 씩 방문하는 사이버스페이스cyber space. 저자에 따르면 추상적인 ‘공간space’이 구체적인 감각 경험을 통해 의미가 부여될 때 ‘장소place’가 된다. 그러므로 그는 “의자를 사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뒤로 약간 자빠지듯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그런 의자를. 의자야말로 공간을 의미 있는 장소로 만드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라는 것.

왕과 귀족의 지배에서 풀려난 근대 부르주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들만의 의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의자에 앉았을 때 주체로서 삶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는 어디로 이사 가든 1인용 가죽 소파만큼은 꼭 들고 다녔다. 그는 바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겪게 되는 장소 상실로 인한 우울함"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이라는 것. 그런 그에게 ‘뒤로 자빠지는 의자’는 구원이었다.

그 의자는 “한쪽 팔로 턱을 괴고 기품 있게 사색하거나, 턱을 만지작거리며 우아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세 나오는’ 의자여야 한다. 의자는 성찰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맞은편 사람을 그윽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장소 상실로 인한 고약한 노인네 증후군”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앉는 의자 하나에도 이렇게 깊은 뜻이 있다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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