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포용의 리더십> 우종철 지음 | 승연사

[더 리포트=정미경 기자] 속담에 ‘황희 정승네 치마 하나 가지고 세 어미 딸이 입듯’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 ‘청백리 18인’ 중 으뜸재상으로 꼽히는 황희 정승의 청빈함을 나타낸 글이다. 황희의 인간됨에 대한 일화 몇가지 소개한다.

‘비새는 초라한 정승집’ 일화가 있다. 하루는 세종이 황희의 집을 찾았는데 너무 초라했다. 방안엔 거적이 깔려 있었고 천정은 빗물이 새서 얼룩져 있었다. 세종이 비용을 대줄테니 당장 집과 세간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그러자 황희는 “나라의 녹을 먹는 선비가 옷과 비바람을 막을 집이 있으면 그만입니다”라며 사양했다.

‘황치신의 집들이’ 일화도 전해진다. 호조판서를 지낸 맏아들 황치신이 집을 새로지어 낙성식(落成式)을 열었다. 낙성식은 완공을 축하하는 잔치이다. 황희는 아들의 집을 돌아보며 말했다.

“선비는 청렴해 비가 새는 집안에서 정사를 살펴도 나라 일이 잘될지 의문인데 이렇게 호화로운 집은 뇌물이 성행치 않았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이런 궁궐 같은 집에는 조금도 앉아 있기 송구스럽다.” (p.348)

이 말을 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자리에 있던 백관(百官)들도 불안해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남에게는 어질었지만 자신의 가족에게는 엄격했던 황희. 황치신은 아버지의 가르침에 크게 뉘우치고 그 집을 버리고 따로 조그만 집을 마련했다.

이 시대의 황희정승은 누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역사에서 배우는 포용의 리더십>(승연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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