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방
고흐의 방

[더 리포트] 상상력 하나로 세계적인 명사가 된 이가 있다.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인 스위스의 우르주스 베얼리(Ursus Wehrli)다. 특이하게 그의 명함 중 하나는 코미디언이다. 베얼리는 ‘정리 정돈의 예술(Tidying Up Art)'이란 기발한 아이디어로 신박한 인생을 보내고 있다.

그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아를의 고흐의 방>을 정리해 유명세를 탔다. 그림을 보면 어지러운 침실이 빗자루로 쓴 듯 깨끗하게 정돈됐다. 책상이며 액자들은 침대 위와 밑으로 모아졌다.

고흐의 그림을 필두로 유명 화가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말끔한' 작품으로 탄생했다. 압권은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 1859~1891)의 그림이다. 유명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베얼리의 손을 거쳐 봉지 하나로 정리됐다. 그림속의 형형색색 ‘점’들을 해체해 모은 것이다. 눈치 챘겠지만 쇠라의 그림 방식인 점묘법을 활용한 것이다. 쇠라가 보면 어땠을지, 반응이 궁금하다.

우르주스 베얼리가 정리한 '고흐의 방(Van Gogh's Bedroom at Arles, 1889년).
우르주스 베얼리가 정리한 '고흐의 방(Van Gogh's Bedroom at Arles, 1889년).

정리 아이디어는 우르주스 베얼리의 팔자를 바꾸었다. TED(www.ted.com)에 있는 그의 동영상은 1백만 뷰를 훌쩍 넘었다.

이 희한한 발상은 어떻게 나왔을까. 일설에는 초겨울 어느 아침, 빵을 사러 가는 길에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미술관에서 스위스 조각가 장 팅겔리(Jean Tinguely, 1925~ 1991)의 조각 작품을 보던 중 영감이 왔다"고 외국의 한 언론에 고백했다.

팅겔리는 화가 잭슨 플록(Jackson Pollock, 1912~1956)처럼 여러 가지 색이나 물건으로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였다. 작품은 복잡하고 어수선하다.

당시 베얼리는 행사가 끝난 후 청소 아줌마가 실내의 모든 잡동사니(작품을 포함한)를 깔끔하게 정리 정돈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영감이 왔다.

이는 아마도 코미디언이라는 그의 직업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평소에도 사물을 비틀고 뒤엎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베얼리는 초기에는 주로 유명 그림을 정리했으나, 지금은 ‘정리하는 기술The Art of Clean Up)'을 내걸고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사진과 디자인 그리고 세상의 사물이나 구조물이 모두 대상이다.

말하자면 하늘의 별도 정돈하고 주차장의 차도 정리한다. 예를 들어 별이 가득한 하늘 사진이 있다고 하자. 가장 밝게 빛나는 별과 중간 별, 그리고 아주 작은 별을 크기대로 차곡차곡 쌓아버린다. 주차장에 있는 차들도 색깔별로 배열한다. 심지어 수프 속의 건더기를 가지런히 무리지어 놓는다.

'알파벳 수프'(Alphabet soup).
'알파벳 수프'(Alphabet soup).

과연 다음에 나올 작품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베얼리는 나름대로 확고한 예술철학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내 작업에서 보고 싶은 걸 보면 그걸로 족합니다. 우리에겐 질서와 무질서한 세계, 둘 다 필요합니다. 그것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균형입니다. 제 작품을 통해 세계를 다르게 보는 즐거움을 알면 좋겠습니다."

성격이 깔끔한 사람들은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방을 그냥 두지 못한다. 그들은 왜 베일리 같은 생각을 못했을까. 정리 버릇을 그림으로 확대했다면 인생 역전이 되는 건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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