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 반도체생산라인 P3·P4 건설현장 인근 60여 개 노점상 형성
현장에서 가까워 시간 아낄 수 있고 다양한 메뉴 즐길 수 있어
사용하는 식재료, 지역 전통시장에서 구매… 지역 경제 활성화 한몫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이 들어서고 있는 경기도 평택시 고덕동 고덕산업단지는 지난 10년 넘게 반도체 공장 건설이 진행되면서 경기남부지역 시골 동네에서 지역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우스갯소리로 최근 고덕동 지역에 유입되는 인구는 ‘삼성전자 임직원과 가족’, ‘일용직 노동자‧자영업자 가족’, ‘그 밖의 인구’ 등 세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일대 한식뷔페를 비롯한 대형 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임대상가는 이미 1억5000만 원대 보증금과 월세까지 1000만 원을 호가하는 호황기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고덕동 여염근린공원 주변 노점상인들과의 거리는 1㎞가량 떨어져 있었다. 이곳에 고덕동 행정복지센터를 중심으로 상점가가 형성되면서 노점상인들과 갈등을 빚고 있지만 평택시는 이들의 상생 방안을 찾지 못한 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기 평택시 고덕동 여염근리공원 인근에 형성돼 있는 노점상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인근 공사현장 인부들이 주문을 하고 있다.  (이주철 기자)
경기 평택시 고덕동 여염근리공원 인근에 형성돼 있는 노점상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인근 공사현장 인부들이 주문을 하고 있다.  (이주철 기자)

29일 오전 10시 30분께 경기 평택시 고덕동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타워크레인들이 무수히 서 있는 반도체 생산라인인 P3, P4 건설 현장에서 인부들이 점심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날 두 시간 동안 이곳에 조성 중인 반도체공장 공사 현장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7000~8000명에 달하는 인부들이 울타리 밖 노점상을 찾았다.

건설 현장 출입구를 빠져나오면서 인도를 따라 여염근린공원 주변까지 노점상 60여 개가 늘어서 있다. 이곳 노점 상인 대부분이 ‘평택시 지역경제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평택지역 주민들이다.

이곳에서는 대부분 라면, 김밥, 토스트, 소세지, 국수, 커피, 주스 등 2500~6000원 가격에 간단하게 허기를 때울 수 있는 분식 종류의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인부들의 안전을 위해 주류는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노점상은 현장 외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데다, 저렴하게 원하는 식단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고, 식사를 마친 자리에서 20분 안팎의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경기 평택시 고덕동 여염근리공원 인근에 형성돼 있는 노점상에 주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P3, P4 건설현장 인력들이 즐겨찾고 있다. (이주철 기자)
경기 평택시 고덕동 여염근리공원 인근에 형성돼 있는 노점상에 주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P3, P4 건설현장 인력들이 즐겨찾고 있다. (이주철 기자)

삼성전자 평택 생산라인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고 있는 박경준 씨는 “하루 8시간 기준 많아야 20만 원 버는데 집에 생활비 등을 보내기 위해서 하루 1~2차례 노점상을 찾아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전까지 경남 거제 조선소에서 힘든 업무에 비해 일당이 적어 그만 두고 작년 말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노점 상인 유모 씨는 “줄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주문 후 5분 안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다 앉아서 쉴 수 있어 찾는 사람들이 적잖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내에서 운영되는 구내식당 ‘포세카’는 일반적인 구내식당보다 규모가 작지 않지만 2500여 명만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한 끼에 5500원을 내고 매일 정해진 식단만 먹을 수 있다.

공사장 인부들이 외부 한식뷔페에 가서 밥 한 번 먹으려면 우선 노점상들이 있는 여염근린공원 앞까지 걸어와야 한다. 공원 앞 삼성로 편도 4차로 가장자리에서는 ‘노란버스’가 ‘손님’을 기다리며 정차 중이다.

노란버스는 1~2㎞ 떨어진 외부 한식뷔페들과 계약을 맺고 ‘고객운송’을 책임지고 있다. 공사 인력들은 한식뷔페에 도착해서도 키오스크 앞에서 기다려 주문한 뒤 식사를 할 수 있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점심시간 1시간 중 30~40분은 이동 시간에 투자해야 한다.

물론 외부 한식뷔페들이 있는 고덕동 행정복지센터를 중심으로 첨단대로를 따라 형성된 상업지구 내에는 일반 음식점을 비롯해 커피숍, 분식, 편의점 등도 있다. 각자 걸어가거나 차량으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이 같은 건설현장 인부들의 부족한 식사 여건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노점 상인들도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점상들의 입지 조건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경기 평택시 고덕동 여염근리공원 인근에 형성돼 있는 노점상 (이주철 기자)
경기 평택시 고덕동 여염근리공원 인근에 형성돼 있는 노점상 (이주철 기자)

“위생이 엉망이다”, “보행자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교통 혼잡과 교통사고 위험을 야기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노점상에 대한 신고가 끊이지 않자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평택시에서도 현장 단속을 나오고 있지만 한켠에는 근심거리로 남아있다.

이곳 노점 상인들은 “얼마 전 셔틀버스에 부딪혀 삼성엔지니어링 소속 팀장이 숨진 사고의 경우 킥보드를 타고 가던 팀장이 셔틀버스에서 열리는 출입문을 피하려다가 당한 안전사고"라면서 "그런데도 행정당국에서는 노점상 때문이라고 책임을 노점상에게 떠념기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이들은 오히려 ‘노란버스’가 교통 혼잡이나 교통사고를 유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점심시간에 삼성로 가장자리 차로에 이중으로 정차하는 노란버스 때문에 이 일대 도로는 편도 4차로에서 도로가 2개 차로로 급격히 줄어드는 병목현상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해당 시간에 공사 인력을 태우기 위해 무리하게 이중 정차를 서슴치 않고, 이 과정에서 삼성로에 병목 구간을 만들어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존재는 노점상이 아닌 노란버스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 “노점상에서 공사 현장 인력들을 모조리 끌어가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는 둥 말도 안 되는 민원이 제기되자, 노점 상인 측은 지난 7월 말 이틀간 일부러 파업을 실시했다.

‘평택시 지역경제 활성화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로 구성된 노점 상인들은 50여 개의 노점 영업을 중단한 것이다.

노점상이 문을 닫은 이틀 동안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주변 건설현장 인부들은 점심식사를 제시간에 해결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었다. 노점상이 부족한 먹거리 여건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는 것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이 같은 환경이 아니어도 이곳 노점상인들은 당장 먹고 살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현재 간경화 말기 환자인 50대 여성 노점상인 송모 씨는 토스트와 라면, 김밥, 음료수 등을 판매하는 노점상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등

그를 비롯해 상당수의 노점상들이 기초생활수급 등 어려운 형편에서 지내고 있다.

이들은 당초 미군기지가 들어서던 대추리, 안정리, 두정리 등 팽성읍 일대에서 살던 주민들이 졸지에 집과 농사 짓던 땅까지 빼앗기고 쫓겨나고 고덕면에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 조성되면서 또 한 번 삶의 터전을 내준 주민들도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삼성전자 제공)

최근 삼성전자 측은 평택캠퍼스 내에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구내식당(포세카)을 추가로 신설하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 다양한 사업장을 찾아다니면서도 점심식사는 꼭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 만큼 구내식당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사업장마다 규모가 방대하다보니 현장 인력들만다 동선을 줄여가기 위해 식사환경 개선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포세카 측에서 매일 대량으로 사용되는 식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서울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 등 평택이 아닌 외지에서 구매해 운송할 수 밖에 없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노점상을 구성하고 있는 평택지역 경제활성화 비상대책위원회 측 주장이다.

이종호 평택지역 경제활성화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삼성전자 측에서 평택캠퍼스 직원들과 공사 현장 인력들이 가까운 곳에서 안전하고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평택캠퍼스 안에 일정 면적의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이 위원장과 노점 상인들은 “현재 노점 상인들이 매일 사용하는 식자재를 평택시장과 송탄시장 등 지역 내 전통시장에서 구매하고 있는 만큼 평택캠퍼스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평택시도 상인회 상인들과 노점 상인들 간에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동시에 삼성전자 측과도 협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평택시 관계자는 “점진적으로 평택캠퍼스 내 식사 공간 등의 환경을 추가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시에서도 삼성전자 측에 요구하는 한편, 삼성전자 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더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