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이진수기자] 테니스는 언제 국내에 들어왔을까. 도입시기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개화파 김옥균에 의하여 1883년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당시 테니스를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한국체육사학계의 통설인 김옥균 도입설은 근거가 없다.

당시의 테니스 문화를 분석한 논문 <개화기 서양인의 테니스 향유>(이영호,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2022)의 분석이다.

논문은 한국의 테니스 서양에서 직접 수입된 론 테니스와 일본을 통해 변용된 연식정구의 두 계통으로 병립했다고 전한다. 개화기에 서양인이 먼저 론 테니스를 들여와 즐기고 식민지화가 되면서 연식정구가 보급되었다는 것.

이어 서양의 론 테니스는 초대 주한 미국 공사 푸트를 통해 소개되었다는 설을 정설로 꼽았다. 김옥균 도입설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테니스가 국내에 도입될 당시엔 ‘척구(擲球)’로 불렸다. (픽사베이)
테니스가 국내에 도입될 당시엔 ‘척구(擲球)’로 불렸다. (픽사베이)

논문에 따르면 푸트가 꾸민 한옥 미국공사관 정원에 론 테니스 구장이 처음으로 조성되었다. 서양인이 정착한 서울 정동에는 테니스 코트가 여러 곳에 조성되었다. 1888년 결성된 서울유니온클럽은 미국공사관 앞의 공원부지에 테니스 코트 3개 면을 조성하여 회원들의 친목과 유대를 도모하는 스포츠로 테니스를 발전시켰다. 

논문은 서울 외에 테니스가 성행하던 곳은 인천 제물포다. 서양인이 많이 머물렀던 게 배경이며, 일찍이 테니스 코트가 조성되었다. 1902년부터는 서울과 제물포의 서양인들이 팀을 구성하여 테니스대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연식정구는 통감부 관리로 들어온 일본인들이 1908년경부터 한국에서 즐겼다. 이후 연식정구는 야외운동으로서 야구와 함께 널리 보급되었다.

논문은 "개화기 서양인이 도입하여 즐긴 론 테니스는 한국 테니스 역사의 전사(前史)이면서, 다른 한편 장소성의 측면에서는 한국 테니스의 기원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옥균이 테니스를 처음 도입한 인물은 아닐지라도 처음 테니스를 친 건 맞는 듯하다. 테니스는 서양인사들과의 교류에 큰 몫을 했는데, 외국문물을 적극 받아들인 개화파 김옥균에겐 테니스가 큰 무기였으리란 사실은 쉽게 유추할 수 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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