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7일 토포하우스에서. 초대전

정현재 작가.
정현재 작가.

[더리포트=조아람기자] “제 그림에서 날카롭고 예민한 슬픔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그 속에서 따뜻하고 평화로운 감수성을 발견했으면 해요.”

정현재 작가는 보석이나 악세사리 같은 화폭을 펼쳐낸다. 반짝거리며 빛이 나는 모습이 견고하다는 얘기다. 브로치 이미지로 옷에 당장 달아도 어울릴 것만 같다. 11~17일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정현재 초대전은 이같은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다.

사실 정현재 작가는 자신이 살아 온 삶 속에 새겨진 사연과 곡절을 화폭에 승하시켜서 사리처럼 내 놓고 있는 것이다. 커피 가루나 흙, 한지 등 생활에서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캔버스 바탕을 터프하면서 견고하게 다져서 그 위에 물감을 칠하고 뿌리기도 한다. 비루하고 흔한 비 미술적 재료를 사용하여 화면의 질감을 풍부하고 고상하게 상승시킨다. 색 위에 색이 덥히고 포개진 색 면은 화사하면서 오묘하게 은은하다. 아마도 거르고 연마한 감정의 결이 화폭에 새겨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명상 스승 아잔브람 스님이 행복은 고통스러운 두 시점 사이의 휴지기라고 하셨습니다. 제 그림도 매한가지라 생각해요.“

그는 사십대 중반에서야 좋아서 틈틈이 그리던 그림에서 제대로, 지속적으로, 노동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작했다. 지난 10여 년간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로 ’배우는 그림‘을 거부해 왔다. 본래적 내면을 지키고 싶어서다.

정현재 작가 작품
정현재 작가 작품

어느날 그는 캐나타 출신의 포크 아티스트인 모드 루이스(Meud Lewis)에 대한 영화를 보다가 그녀에게 이입되고 그녀의 삶에 감동을 받았다. 그 영화 속에 나온 대사 ’당신의 시선으로(From your perspective)‘란 말에 꽂혔다. 영화 속에서 작품을 의뢰한 사람에게 루이스가 어떤 그림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 의뢰인이 ’당신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저는 관객들이 저의 시선으로 그린 작품을 의뢰한 듯이 그림을 그리고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타인에게 제 자신의 내면과 감정, 그리고 제가 바라보는 세상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그가 들려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들은 다양한 양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매우 표현주의적인 경향을 띠는 이유다.

”저는 그림을 통해 제 스스로의 내면이나 감정이 객관화 되고 정리되는 쾌락을 누리기도 합니다. 제작된 작품이 전시가 되면서 그 작품 전시가 하나의 사건(event)이 되고 타자와 마주치게 되는 것이지요. 비로서 저는 관객과 하나의 장 안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감각을 긍정하고, 더 적극적으로 철저하게 밀고 나가려는 작가의 자세에서 희망을 본다. 라캉이 말했듯 우리가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잃어버린 것‘을 ’단조로운 현실 속에서 특별한 것‘으로 포착해 내는 것이 진정한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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