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표율사가 760년에 수도하던 지금의 변산인 선계산의 불사의방. (사진=신정일)
진표율사가 760년에 수도하던 지금의 변산인 선계산의 불사의방. (사진=신정일)

[더리포트] 오천년 역사가 켜켜이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적. 대대로 전승된 장인의 솜씨와 금수강산이 빚어낸 우리의 소중한 국가자산을 찾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어떤 사람은 수많은 금金에, 어떤 사람은 가없는 이상理想에, 어떤 사람은 부질없는 꿈에, 어떤 사람은 책에, 어떤 사람은 길道에, 전체를 걸기도 하고, 가다가 포기도 하며 살다가 간다. 그것이 곧 인생이다. 분명한 것은 전체를 걸어야 전체를 얻는다. 역사 속에서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걸었던 사람들의 큰 발자국을 남긴 곳을 찾아가 보자.

<마의 산>의 작가 토마스 만의 소설 <선택된 인간>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기독교적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근친상간에 의해 태어난 그레고리우스는 운명의 장난으로 자신을 낳은 친어머니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게 되는 이중의 근친상간의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

둘째 딸이 태어나기까지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관계가 밝혀지자 각자 참회의 길을 떠난다.

그레고리우스는 외딴 섬의 절벽에서 가혹한 참회의 시간을 보내면서 고슴도치같이 작게 변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17년 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해야 할 시기에 로마의 한 경건한 그리스도교인은 꿈에서 교황으로 ‘선택된 자’는 그레고리우스라는 계시를 받고, 신의 섭리에 의해 교황이 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처럼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열렬한 참회의 고행을 통해 마침내 신에 의해 ‘선택된 인간’인 교황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는 소설이 <선택된 인간>이다. 그러한 그레고리우스의 전 생애를 소설 속에서 사제 클레멘스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자, 재미있고 이상한 죄를 짓는 것이 좋겠다. 이 사람들의 운명이 이처럼 좋게 끝났는데, 우리라고 해서 파멸할 까닭이 없지” 하는 따위의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란다. 그것은 악마의 속삭임이다. 우선 인간의 형태를 고슴도치의 형태가 될 때까지 바위 위에서 17년 동안 살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또 20년 이상이나 병자의 몸을 씻어주는 일을 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농담으로 끝낼 일인지 아닌지 알게 될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런 참회의 시간이었는가? 목숨을 건 참회와 기도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는 과정이 서사시처럼 펼쳐진 소설이 토마스 만의 빼어난 소설 <선택된 인간>이다.

그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자신의 전 생애를 걸고 정진하다가 깨달음을 얻게 된 사람의 이야기가 우리나라 불교 역사 속에 있고, 그 사람이 바로 신라의 고승 진표율사였다.

전라북도 김제군에서 태어난 진표는 세속에 있을 때 활을 잘 쏘았다. 어느 날 사냥하다가 논둑에서 쉬면서 개구리를 잡아 버들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 두고 산에 가서 사냥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개구리 일은 잊어버렸다.

다음 해 봄 또 사냥을 하다가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문득 지난해 일이 생각이 나서 그 자리에 가서 보니 개구리들이 버들가지에 꿰인 채로 울고 있었다. 크게 놀란 진표는 뉘우치고서 내가 어찌 먹기를 위하여 해가 넘도록 이렇게 개구리들에게 고통을 받게 하였는가 하고 드디어 출가를 결심하였다.

12세에 금산사에서 출가한 진표에게 순제가 ‘공양 차제 비법 한 권’‘점찰 선악 업보경 두 권’을 주면서 말했다.

”너는 이 계법을 가지고 미륵과 지장 두 보살 앞에서 지성껏 빌어 참회를 하고 직접 계를 받아 이 세상에 전파하라.“

진표가 그 교시를 받고 절을 나와서 나라 안의 유명한 산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그의 나이 27세가 되던 해 760년에 지금의 변산인 선계산의 '불사의방'에서 수도를 하기 시작했다.

불사의방에서 내려다본 변산. (사진=신정일)
불사의방에서 내려다본 변산. (사진=신정일)
변산 마을에서 올려다본 불사의방.(사진=신정일)
변산 마을에서 올려다본 불사의방.(사진=신정일)

의상봉 바로 아래 깎아지른 벼랑의 비좁은 곳, 불사의방은 말 그대로 “마음을 비우고 신에게 올바른 것을 묻는 방”이다.

쌀 스무 말을 쪄서 말린 뒤 양식으로 삼고 그 방에서 쌀 다섯 홉으로 하루를 먹고, 한 홉은 덜어서 쥐를 먹이면서 부지런히 미륵상 앞에서 계법을 구하였다.

 이 비좁은 공간에서 수도를 할 때 팔과 다리가 부러지는 곤란을 겪게 되는데 그때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진표율사는 그곳에서 3년간에 걸쳐 도를 닦았다. 하지만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자 절망감으로 뛰어내렸다. 천길 벼랑에서 몸을 던져 떨어지는 진표율사를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두 손으로 몸을 받들어 다시 바위 위로 올려 주었다.

진표율사가 다시 발분하여 잠을 자지 않는 수도를 스무하루를 하기로 작정하고 깨달음에 정진하자 3일 만에 손잔등이 꺾여져 떨어졌다.

그래도 흔들림이 없이 21일간을 계속 기도를 드리자 지장보살이 손으로 쇠지팡이를 흔들면서 와서 쓰다듬으니 손과 발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이레 째 되던 밤에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이 나타나 드디어 가사와 바랑을 주니 진표율사가 이에 감동하여 더 정진하였고, 그 뒤 만 21일 만에 하늘이 주는 시력을 얻어 도솔천의 무리들이 오는 광경을 보았다. 

그때서야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이 나타나 진표율사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대장부여, 장하도다. 구함이 이러하여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간절히 참회하였구나.” 하면서 지장의 계법을 주었고 미륵보살은 다시 패 쪽 두 개를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두 패 쪽은 바로 내 손가락 뼈이니 이는 처음 되는 두 가지 ’깨달음‘을 비유한 것이요, 또 ’9자‘는 바로 불법이요, ’8자‘는 부처가 되는 씨앗이니 이로써 마땅히 파보를 알 것이다. 너는 지금 몸을 버리고 태국왕의 뜻을 받아 후생은 도솔천에 날지어다.”

이 말을 마친 두 보살은 곧 사라졌다. 그때가 임인년 4월이었다. 계법을 받은 진표율사가 금산사를 세우고자 태연전에 닿으니 갑자기 용왕이 나타나 옥 가사를 바치면서 8만 무리를 데리고 금산사로 모시고 가니 사람들이 모여들어 며칠 만에 절을 다 지었다.

그 뒤 곧바로 감응이 있어 미륵보살이 도솔천으로부터 구름을 타고 내려와 진표율사에게 계법을 주었고, 진표울사가 신자들에게 시주를 권해서 미륵장륙상을 부어 만들고 다시 그가 내려와 계율을 주는 장엄한 광경을 금당의 남쪽 벽에 그리게 하였다.“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실린 글이다.

그때 진표율사가 목숨을 걸고 참회수행을 한 불사의방不思議房은 의상봉 아래 깎아지른 듯한 벼랑 아래 있다, 공군부대의 협조를 받아 내려가서 10여 미터가 되는 일직선인 벼랑을 밧줄을 잡고 내려가면 1미터도 안 되는 바위공간이 있고, 그곳이 바로 진표율사의 수도터인 불사의방不思議房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1백 척 가량이 되는 나무로 만든 계단 아래에 절이 있었고, 그 아래로는 낭떠러지였는데, 해룡海龍이 철끈으로 지붕을 묶고, 바위에는 정을 박아 절을 세웠다고 한다.

그레고리우스가 참회의 수도를 했던 곳은 바닷가였는데, 이 비좁은 바위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수도를 했다는 그 자체가 신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랜 수행을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을 불가佛家에서는 어떻게 보았을까? 

 “깨달음 이전의 것을 욕심 많은 노여움이라 한다면, 깨달음 이후의 것은 불타의 지혜이다. 사람은 예전과 다름이 없지만 그가 한 일은 다를 뿐이다.” 라고 말한 사람은 백장회해百丈懷海였고, 설악산 오세암에서 깨달음을 얻은 만해 한용운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사나이 이르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 / 몇 사람이나 오래도록 나그네로 지냈는가. / 한 소리로 온 우주를 갈파하니 / 눈 속에 복숭아꽃 하늘하늘 흩날리네.“

예나 지금이나 깨달음의 길은 험하고 먼데, 요즘의 수도자들은 인간 본연의 깨달음에는 진실로 관심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망연히 앉아 천 길 벼랑 아래 사람 사는 곳을 바라보는 그 순간 한 오리 연기가 희망처럼 피어올랐다.

선계산의 불사의방. (사진=신정일)
선계산의 불사의방. (사진=신정일)
선계산의 불사의방 오르는 길. (사진=신정일)
선계산의 불사의방 오르는 길. (사진=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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