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이진수기자] 수양대군 세조는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임금이다. 그의 이런 행적과 별개로 치적은 괄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불교를 숭상한 점이 눈에 띤다. 그에 관한 일화 중 하나는 문수보살에 관한 것이다. 

세조가 어느날 온천을 찾아가 아이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했다. 세신 후 왕은 아이에게 "내가 왕이니 등을 밀어줬다는 것을 비밀로 해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아이 역시 "당신도 문수동자가 등을 밀어줬다고 알리지 마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세조의 숭불정책을 상징하는 이 일화 속에는 세조의 전략이 숨어있다. 

<세조 후반기 순행과 불교>(이정주,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사총', 2022)은 왕의 지방 순행을 연구한 논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세조는 조선시대 군주 가운데 드물게 잦은 지방 순행을 한 임금이다. 

논문은 세조의 지방 순행은 군사 훈련을 통한 정권 안정, 민정 시찰을 통한 민심 수습, 온천욕을 통한 건강 관리 등 다목적 측면에서 이루어졌다고 밝힌다. 

이같은 지방순행을 집권 전, 후반기의 행적이 뚜렷하게 달랐다. 

집권 전반기의 순행이 군사 훈련과 민정 시찰 등 실질적 목적 달성을 위해 진행되었던 데 반해, 후반기에는 건강 관리와 성지 순례 같은 개인적 동기 때문에 순행이 이루어졌다. 

특히 세조는 집권 후반기 순행을 통해 불교계 및 일반 백성과 광범위한 직접적 접촉을 갖고자 했다. 논문은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뒀다.

"이는 성리학에 바탕하여 사대부 문신 위주의 정치를 표방했던 전후의 조선시대 국왕들과는 매우 구별되는 특이한 통치 행위였다. 세조는 국왕의 대민 접촉이 거의 없던 조선시대 문신세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피지배층과 군사력에 바탕한 통치를 구상했고, 이를 실현할 방편으로 순행을 활용했던 것이다."

세조의 순행 양상은 동왕 12년(1466) 강원도 방문을 계기로 급속히 변화했다. 

이전의 순행이 군사(軍事)와 민사적(民事的) 현안을 다루기 위한 것이었던데 반해, 강원도 순행은 온천욕과 성지 순례 같은 세조의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안정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었다. 

보살과의 일화가 등장한 것도 이때다. 세조는 방문했던 금강산에서 담무갈보살을, 오대산에서는 문수보살을 친견했다.

논문에 따르면 강원도 순행으로 인해, 세조는 당시 민중에게 인기가 있던 문수, 관음보살과 금강산의 많은 보살을 거느린 담무갈보살을 모두 만난 임금이 됐다. 

논문은 세조의 지방 순행, 보살의 출현과 친견과 그 사실의 민간 유포 같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그의 신성성을 조작하고 퍼트렸다고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세조의 순행을 통한 불교 접촉은 자신의 통치 기반을 공고히 하기위한 고도의 선전술의 일환이었던 것"이며 "요순시대의 정치를 재현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세조의 불교에 관한 야사와 그 의미는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2019)에서도 다뤄졌다. 영화는 이 설화들이 세조와 한명회의 사주를 받고 연출한 선전술라는 설정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세간의 평이다. 논문은 그 내용을 학술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 포스터.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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