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금강. (사진=신정일)
매년 봄이면 봄마다 무릉도원이 펼쳐지는 무주 금강. (사진=신정일)

[더리포트] 오천년 역사가 켜켜이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적. 대대로 전승된 장인의 솜씨와 금수강산이 빚어낸 우리의 소중한 국가자산을 찾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매년 봄이면 봄마다 무릉도원이 펼쳐지는 지역이 있다. 비단 강이라고 부르는 금강이 제법 구성지게 흐르는 무주군 부남면 소재지에서 부남벼리길, 잠두마을 길, 덕유산에서부터 비롯된 남대천이 금강으로 합류하는 대차리까지 펼쳐진 금강길, 길이다. 강이며, 온산이 복사꽃으로 뒤덮여서 봄 노래를 부르는 곳, 자연의 보고가 바로 그곳이다.

복사꽃만이 아니다. 길가에 심어진 벚꽃이 만개해서, ‘한 점 소리 없이 꽃잎이 지고,’ 라는 시 구절은 너무 소박해서 가슴이 아릿하고, ‘꽃잎 하나 날려도 봄이 가는데,’라는 두보의 시 구절이 성큼성큼 흘러가는 강물이 가슴을 휘젓고 지나가기도 한다.

이 강변에, 조팝나무 꽃들과 곧이어 피어날 찔레꽃, 가을이면 또 어떤가. 온통 단풍잎이 강물까지 빨갛게 물들이는 이 강변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다시 찾고 또 찾아가는 길이 바로 비단길이다.

무어라고 표현조차 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꽃, 복사꽃 피는 정경을 사랑했던 이백은 그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이라는 절창 한 편을 남겼다.

왜, 산에 사느냐기에 /그저 빙긋이, 웃을 수밖에 /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 분명 여기는, 별천지인 것을

‘산에 사는 마음을 속된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고, 빙그레 웃음으로 답하고서, 흐르는 물에 복사꽃을 띄운다.‘ 라는 시 구절처럼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그 아름다움의 진면목을 볼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지극한 곳에 이르지 못하면 아무리 곁에 있어도 볼 수가 없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복사꽃 피는 길은 이리저리 휘돌아가고, 강물은 소리도 없이 흐른다. 이러한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마음이 자유로울까?

내가 훗날 도시를 떠나 전원으로 돌아온다면 이러한 곳에 터를 잡고 ‘세상을 잊은 사람’처럼 살아보리라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것 역시 어쩌면 내 마음속에 다짐으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무주 금강. (사진=신정일)
복사꽃 피는 길을 이리저리 휘돌아가다 눈길이 머무는 무주 금강. (사진=신정일)

가다가 뒤돌아보면 산은 분홍빛으로 활활 타오르고, 강에는 세 개의 다리가 <다리 박물관>처럼 놓여 있다. 그 아래를 흐르는 강물 소리에 장욱張旭의 <복사꽃은 온종일 물 따라 흐르는데>라는 시 한 편이 떠오른다.

“들녘 저만치 안개 속에 다리 둥실 걸렸는데 / 시냇가 서쪽 바위에서 뱃사공에게 물어 보네 / 복사꽃 온종일 물 따라 흐르는데 / 맑은 시내 어디쯤에 도화동桃花洞이 있는냐고?

도화동이 어디가 있느냐고 묻는 시인에게 지금 이곳이 도화동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옛 사람은 이미 간곳이 없고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소리와 연 푸른 빛으로 갈아입은 버드나무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니...

언제 처음 놓았는지도 모르는 다리가 불어오른 강물에 금세라도 잠길 듯 놓여 있고, 바로 그 위를 잠두 1교와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인 잠두교가 지난다.

강물이 다리 아래를 흘러 바다로 가듯이 우리들의 인생도 쉬지 않고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문득 옛이야기 두 편이 떠오른다.

자가 목지牧之인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이 절강성에서 어느 소녀를 만났다. 그의 어머니를 찾아가 두목은 십 년 후 그 소녀를 아내로 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장안에서 관료생활을 하다 보니 찾아갈 겨를을 얻지 못해 14년 만에 호주의 관리로 부임하여 그 소녀를 찾았다. 그런데, 그 소녀는 그가 오기 3년 전에 이미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서 자식들까지 두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접하고 절망한 두목이 지은 시가 <탄화歎花>라는 시다.

“스스로 봄을 찾아 나섬이 늦은 것을 슬퍼하며 봄꽃 빨리 핌을 한탄한들 무엇하리. 광풍에 붉고 아름다운 꽃잎 떨어지고 푸른 잎은 그림자를 치우며 과실만이 가지에 가득하네.“

두목은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는 자연에 빗대어 그의 사랑이 결실도 맺기전에 다른 사랑으로 전이해 간 것을 노래했던 것이다. 당나라 중기의 시인 최호도 그와 비슷한 경우를 겪었다.

무주 잠두마을.  (사진=신정일)
온산이 복사꽃으로 뒤덮여서 봄 노래를 부르는 곳, 무주 잠두마을. (사진=신정일)

최호가 청명절에 답청踏靑을 나섰다가 복사꽃이 만발한 어느 집에 들어가 처녀를 만나 물을 청해 마시고, 그 다음 해 청명절에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복사꽃은 지난해처럼 만발했으나 그 처녀는 간 곳이 없었다. 그때의 애잔함을 시로 표현한 것이 <인면도화人面桃花>라는 시이다.

“지난 해 오늘의 이 문안에는, 그 사람 얼굴과 도화 꽃이 서로 어우러져 붉었는데,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고, 도화꽃만 의구히 봄바람에 웃고 있네.“

머물러 있는 것이 무엇이며 기다리지 못하고 가는 것은 또 무엇인지, 멀리 흐릿한 나무들이 조금 있으면 푸른 잎들로 무성할 것이다. 그 사이 어느덧 봄꽃이 지면서 가버릴 봄. 

세상사의 이치와 같이 너무 일러도 안 되고, 너무 늦어도 안 되며, 사월 셋째 주말에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무릉도원 길을, 봄이 흐르는 소리 들으며 걷다가 보면 ‘돌아보니 봄바람에 하나같이 꽃’이라는 시 구절과 '미인은 간곳없고 도화만이 휘날리더라.'라는 최호의 시 한 소절이 가슴속을 아릿하게 스치고 지나갈 터.

이 아름다운 길을 곧 문화재청에서 국가 명승 길로 지정할 것이다. 어서 가서 걸어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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