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삼정리의 노을.
남망산공원에서 본 한려수도의 빼어난 풍광 . (사진=신정일)

[더리포트] 오천년 역사가 켜켜이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적. 대대로 전승된 장인의 솜씨와 금수강산이 빚어낸 우리의 소중한 국가자산을 찾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남해의 푸른 바다와 올망졸망한 산들이 펼쳐놓은 풍경이 한 폭의 산수화 같은 곳이 통영이다. 한려수도가 한눈에 내려다뵈는 남망산공원에서 바라보면 미륵이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섬이 미륵섬이고, 그 앞바다가 한려해상국립공원(閑麗海上國立公園)이다. 이 공원은 전남 여수시에서 경남 통영시 한산도(閑山島) 사이의 한려수도 수역과 남해도(南海島) ·거제도(巨濟島) 등 남부 해안 일부를 합쳐 지정한 해상국립공원이다.

미륵산 정상에서 보면 서쪽으로 멀리 남해의 금산이 그림처럼 보이고 비진도, 매물도, 학림도, 오곡도, 연대도 등의 섬들이 꿈길에서처럼 달려들고 뒤질세라. 저도 연화도, 욕지도, 추도, 사량도, 곤지도 등의 섬들이 파고든다. 문득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정현종의 시 구절이 떠오르며, 그 아름다운 미륵도의 일주도로를 따라가다 멎는 곳이 통영시 삼양면 삼덕리 원항(院木)마을이다.

이 마을에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마을제당이 남아 있으며, 그것이 바로 중요민속자료 제 9호로 지정된 삼덕리 마을제당이다.

원항 북쪽에는 돌깨미라는 산이 있고, 원목 남동쪽에는 동매라는 이름의 산이 있다. 원목에서 남평리로 넘어 가는 고개가 원목곡이고, 원목 동쪽에 있는 골짜기 이름은 앳굴(골)이다. 원목 남쪽에 있는 개 이름은 당개(당포)라고 부르고, 장군봉 북쪽에 있는 마을은 활목이라고 부르는 궁항弓項이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당산나무 밑에는 돌장승이 있다. 언제나 그곳에 가면 어느 때 누가 기도를 드리고 갔는지 모르지만 기도를 드린 흔적으로 막걸리 병이 놓여있다.

당산나무는 대개 생명의 유지력과 수태시키는 생식기능, 또는 악귀와 부정을 막고 소원을 빌면 성취시켜주는 당신堂神의 표상이며 신체라고 할 수 있다.

통영 장군봉에서 본 마을 전경. (사진=신정일)
통영 장군봉에서 본 삼덕리 마을 전경. (사진=신정일)

이곳 삼덕리의 마을제당은 장군당. 산신도를 모신 천제당. 그리고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돌장승 한 쌍과 당산나무 등을 모두 포함되어 중요민속자료 제 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마을 제당은 삼덕리 사람들의 다신 적 신앙 예배 처이고 풍요와 안녕과 번영을 상징하는 곳이다.

마음이 쓸쓸하고 울적할 때, 글이 진척이 나가지 않을 때 문득 찾아가서 쉬었다 오는 곳이 삼덕마을의 서쪽에 있는 장군봉이다, 장군봉으로 오르는 고갯마루에도 양쪽 길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돌장승이 있다. 큰 것이 남자 장승으로 높이가 90cm이고 여자 장승은 크기가 63cm쯤 된다. 예전에는 나무로 만들어 세웠으나 70여 년 전에 돌로 만들어 세웠다고 전한다. 

장군봉으로 가는 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좌측으로 펼쳐진 삼덕리 포구에 배들은 눈이 부시게 떠 있고, 바라다 보이는 마을은 그림 속처럼 평안하기만 하다. 울창한 나무 숲길을 헤치고 오르다 보면 암벽이 나타나고 조심스레 오르다 보면 밧줄이 걸려 있다. 겁이 많은 사람들에게 쉬운 코스는 아니지만 조심스레 오르면 갈만하다.

그 코스를 지나면 마당 같은 바위에 오르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미륵섬 일대와 한려수도, 말 그대로 장관이다. 자연은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문득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묘사한 같이 떠오른다.

“내가 안락의자에 누워 쉬게 된다면 나는 파멸할 것이다.

나를 끝장낼만한 말로 나를 속일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마지막 날일 것이다.

내기를 하자,

내가 어떤 순간에,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경탄하는 순간

그때는 네가 나를 사슬로 묶어가도 좋다.

그러면 나는 기꺼이 멸망하겠다.

그때는 죽음의 종소리가 울리고

그리고 넌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계는 멈추고 바늘은 떨어지고

나의 시간은 끝날 것이다.“

통영 제당. (사진=신정일)
삼덕리 마을제당. (사진=신정일)

모든 시간이 멈춘 듯한, 그리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눈망울마저 정지된 듯한 순시간이 지나고, 나리꽃과 조팝 꽃이 만발한 넓은 마당 같은 바위에서 서쪽을 바라본다.

 서남쪽으로 쑥섬. 곤리도. 소장군도가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오비도 월명도 등 크고 작은 섬이 있으며, 서쪽으로 통영시에 소속되어 있는 그 아름다운 섬 사량도가 보인다. 이곳에서 날이 저물어 갈 때 사량도를 넘어 남해 쪽으로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 시간이 얼마나 복된 시간이었던지를 가슴 시리게 깨닫게 된다.

한려수도의 진주 같은 풍경에 도취 되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숲 사이 길을 조금만 더 오르면 장군당에 이른다. 장군당 가기 전에 있는 천제당에는 산신도가 한 점이 걸려 있으며 장군당에는 갑옷 차림에 칼을 들고 서 있는 장군봉의 산신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림 속의 주인공은 고려 말 선죽교에서 이방원에게 피살당한 최영장군이라고도 하고 노량해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이순신 장군이라고도 한다. 어느 말이 맞는지는 몰라도 가로가 85cm 세로가 120cm 쯤 되는 그림 앞에는 나무로 만든 말 두 마리가 서 있는데 이 지역에서는 이 말을 용마龍馬라고 부른다. 큰 말은 그 길이가 155cm이고, 높이는 93cm이이다. 작은 말은 길이가 68cm이고 높이는 65cm쯤 된다. 두 마리다 다리와 목을 따로 만들어 조립했다.

자세히 보면 그림과 목마가 아주 빼어난 장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고 서툴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데, 마치 유원지에서 보는 회전목마를 닮았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철마鐵馬였다고 하는데, 그 철마가 없어진 뒤 이 목마로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굿당에서 말을 신으로 모시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 이유가 여러 가지이다. 백마 혹은 용마라고 하여 말을 신격회하는 숭배 전통도 잇고, 어떤 경우에는 예전에 만연했던 마마병을 없게 해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서낭신이 타고 다니시라고 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 무서운 호랑이를 막기 위해 만들기도 했다. 그러한 경우를 보면 서낭당에 모셔진 말의 대부분은 뒷다리가 부러지거나 목이 부러져 있는데 그것은 말이 호랑이와 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삼덕리 원항 마을의 남쪽에 있는 당포마을은 1592년 6월 2일 이순신이 20여척의 배로 왜선을 물리친 곳이기도 하다. 당포성은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으로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많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 전한다.

그 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구들에 의해 당포성이 점령당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는데, 이것이 당포승첩이다.

통영 장군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신정일)
통영 장군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신정일)

장군봉에서 바라다 보이는 미륵산 자락에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잠들어 있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 만큼 바닷 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통영주변에는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북쪽에 두루미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통영 역시 섬과 별다름 없이 사면이 바다이다. 대부분의 집들이 송이버섯처럼 들어앉은 지세는 빈약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연 어업에, 혹은 어업과 관련된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면 통영은 해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박경리 선생이 자신의 고향 통영을 세밀화처럼 묘사한 <김약국의 딸들>의 한 소절을 떠올리며 바라본 삼덕리 일대는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다. 그 장군봉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어서 가고 싶지 않은가?

-신정일(문화사학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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