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읍천리 주상절리. (사진=신정일)
경주 읍천리 주상절리. (사진=신정일)

[더리포트] 오천년 역사가 켜켜이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적. 대대로 전승된 장인의 솜씨와 금수강산이 빚어낸 우리의 소중한 국가자산을 찾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등잔 밑이 어둡다.’ 오래고 오랜 세월 전해 오는 우리나라 속담이다. 그런데, 그 말이 맞다. 자기 옆에 보물이 있어도 그것이 보물인지를 모르고, 보석 같은 사람이 있어도 소중한 사람인지를 모르고 지나치다가 나중에야 그 진가를 너무 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다.

2007년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18일 동안 걸을 때에는 “민간인 출입을 금합니다.” 라는 표지판이 서 있고, 군부대가 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7번 국도로 돌아갔다. 그 뒤 <동해 바닷가 길을 걷는다>라는 책을 펴낸 후에 문화체육관광부에다가 나라 안에서 제일 긴 도보 답사길을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그 길이 ‘해파랑 길’로 명명되면서 나라 안에 아름다운 길로 자리잡았다.

그 길을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에서 다시 걷게 된 2011년 봄,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을 지나가는데, 마침 초소에 군인들이 없어서 들어갔는데, ’유레카!,‘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읍천항과 하서항 사이의 해안을 따라 약 1.5km에 이르는 주상절리 중 바다 한가운데에 한 떨기 연꽃이나 부채처럼 누워 있는 비경 중의 비경 주상절리가 눈 안에 선뜻 들어온 것이다.

"그대들의 눈에 비치는 사물들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바라보는 모든 것에 경탄하는 사람이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 나오는 그 구절이 현실로서 내 앞에 처음 나타난 것이다. 

읍천리 바닷가.(사진=신정일)
읍천리 바닷가.(사진=신정일)

한국전쟁이 끝난 뒤, 동해 바닷가의 모든 길에 철조망이 쳐지고, 그 바닷가에 군부대가 들어섰다. 그 뒤로 이곳을 지키는 군인들은 대를 이어가며 오랜 세월 주상절리를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바다에 떠 있는 돌무더기, 또는 기이한 바위 덩어리로 보았을 뿐, 그것을 나라 안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라고 여기지 못한 것이다.

군인들뿐만이 아니라 이 지역에 살았던 옛 사람들의 어떤 글에도 전해오는 말에도 없다. 한글학회에서 펴낸 <한국지명총람> 월성군(현재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편에도 주상절리에 대한 이름은 하나도 없다. 

"본래 장기군 양남면의 지역으로 읍천포가가 되므로 읍냇가, 읍천포, 읍내포라고 하였다."

놀라움에 뛰는 가슴을 가라 앉힌 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온갖 것 보러 태어났건만, 온갖 것 보아서는 안 된다 하더라.”라는 그 말을 어기고 금지된 곳을 들어가서 발견한 주상절리를 사진을 찍어 페북을 비롯한 인터넷에 올렸다.

그 뒤 양남면 읍천리의 주상절리는 국가 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12년에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하였다, 그 뒤 전국의 수많은 사진작가들 사진 속에 담겼으며, 지금은 그 일대가 대처가 되어서,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 곳이 되었다.

중국 귀주성의 만봉림이나 장가계가 뒤늦게야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과 같이, 해파랑 길을 제안한 (사)<길 위위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때문에 알려진 명승이다.

그 당시 나와 함께 해파랑 길을 걸어서 답사했던 사람들이 그 지역의 땅을 샀더라면 다 내노라하는 부자가 되었을 것인데, 부자는 하늘이 내는 것인가. 그곳에 땅을 살려고 마음 먹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의 주상절리는 신생대 제3기인 마이오세(약 2,600만~700만 년 전) 때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서의 화산활동으로 인하여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당시 초소가 있던 곳에 양남 주상절리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지은 것은 2017년 10월이었다.

해안을 따라 발달한 읍천리 주상절리군은 위로 솟은 주상절리뿐만 아니라, 부채꼴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 누워있는 주상절리 등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가 있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절경은 둥글게 펼쳐진 부채꼴 주상절리로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형태이다. 읍천리 주상절리는 차곡차곡 쌓아놓은 육각형의 나무재목들이 불에 탄 형태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쟁여져 있고, 수평 방향으로 발달해 있기도 한다.

이렇게 주상절리의 형태가 다양한 것은 마그마가 지표면 위로 분출하지 못하고 지각 얕은 곳으로 스며 들어간 상태에서 냉각과정을 거쳤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횡단면의 지름은 20에서 100cm로 다양하며, 주상절리의 형태들은 오각에서 육각, 그리고 팔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겸재 정선의 그림 속에 남아 있는 북한의 강원도 통천에 있는 총석정과 같은 형태의 주상절리나 서귀포의 주상절리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 읍천리의 주상절리다.

읍천리 바닷가. (사진=신정일)
읍천리 바닷가. (사진=신정일)

"네가 서 있는 곳을 깊이 파보라. 샘은 발아래 있다. 이곳이 아닌 다른 먼 곳에, 미지의 이국땅에서 자신이 찾는 것과 가장 걸맞는 것을 찾고자 하는 젊은이가 얼마나 많은가.

실은 자신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신의 발아래야말로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 원하는 것이 파묻혀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보화가 잠들어 있다.”

니체의 <방랑자와 그 그림자.> 에 실린 글이다. 니체가 권고한 것과 같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 바로 그곳에 수많은 보화가 숨어 있다, 눈 크게 뜨고 찾아내면 된다.​

-신정일(문화사학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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