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1930년대 ‘문화’ 잡지 '대조(大潮)' 연구]

[더리포트=조아람기자] <논문읽기> "시간은 흐른다. 현재는 곧 과거가 되고 미래는 곧 현재가 된다...인생이란 공간적 존재도 이 시간이란 고속도의 배를 타고 어디론지 항해(航海) 직진(直進)할 뿐이다." -창간호

'대조(大潮)'는 1930년 3월 15일자로 창간된 학술과 문예를 아우른 종합지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잡지다. 이 잡지를 연구한 논문이 있다. 

<1930년대 ‘문화’ 잡지 '대조(大潮)' 연구>(배현자, 현대문학의 연구, 76권0호, 2022)는 연구목적을 "선행 연구가 놓친 점들을 짚어 기본 서지를 새롭게 정리하고, 이 잡지의 발간 주체의 면면과 역할 및 발간 목적과 편집 방향을 탐색하여 그 의의를 정리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대조' 제2호. (출처=한국잡지백년2)
'대조' 제2호. (출처=한국잡지백년2)

논문을 살펴보면 '대조'는 '신문화 창성'을 목적으로 한 문화 잡지이지만 단순한 문화를 뛰어넘는 '사회적 색채'가 강했다.

논문에 따르면 편집 방향의 큰 줄기는 조선인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을 자각하고 그것에 대항하는 문화를 형성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기자 및 특파원으로 활동한 이로는 ‘최용도’, ‘동세현’, ‘최석환’이 있다. 이들은 청년운동, 독립운동 등을 해 온 인물들이다. 이들은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된 문제들에 대한 논란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담론을 형성해 갔다. 

필진은 약 60여 명이었는데 어느 한 진영에 치우치지 않았으며, 신진 학자의 새로운 연구 성과를 알리는 데 주력하기도 하였다. 

"관심 분야 역시 사회과학, 자연과학, 의학, 종교, 예술 등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사회 관심사를 종합적으로 다루면서 문화의 새바람을 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층 강화된 일제의 검열로 인해 기획한 대로 원고가 게시되지 못한다. 그로 인해 출간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도 한다."

논문은 "비교적 길지 않은 기간에 발간호마다 매진되는 등 호응은 좋았으나, 검열 등의 현실 문제에 부딪혀 결국 목적한 바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단명했다"고 전한다.

잡지에 실린 ‘압록강 벌목’의 한 대목은 이 잡지의 정체성을 엿보게 한다. 

"오늘의 신의주는 실로 이 벌목 위에 건설된 도시이며, 벌목과 함께 번영하고 벌목과 함께 조선인의 경제적 지위를 빼앗은 것입니다. 이 무진장의 벌목은 영림서(營林署)의 요릿감입니다."

논문이 전하듯 '그 발간 상황과 명멸 과정은 근대의 출판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단적인 사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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