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 오천년 역사가 켜켜이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적. 대대로 전승된 장인의 솜씨와 금수강산이 빚어낸 우리의 소중한 국가자산을 찾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역사와 문화유산을 주제로 강연하다가 청중에게 우리나라 국보1호~10호에 대해 물을 때가 있다. 당장 국보 2호부터 말문이 막힌다. 그 답을 아는 이 드물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천안지역을 답사할 때 암행어사로 온 나라에 명당이라고 널리 알려진 은석산의 박문수를 답사하고 마일령으로 향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여러 장에 걸쳐 실려 있는 마일령은 추풍령을 넘어온 경상도와 충청도 길손들이나 보부상들이 청주와 목천 거쳐 서울로 가기 위해 넘는 성거산 자락의 큰 고개였다.

25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마일령에서 만일재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그 고개를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역사가 서린 그 고개를 넘으며 버스 기사에게 다음 행선지가 홍경사라고 알려주며 물었다. 

"여기서 가깝지요,?" ”가깝긴 한데 선생님, 그 곳이 갈비집으로 변했는데요?” “예? 갈비집이요? 거긴 국보 제7호인 홍경사비가 있는 곳인데, 그럴리가요.”

그렇게 말하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검색을 하면 '봉선홍경사갈기비'라고 쓰여져 있다. 때문에 문화재를 잘 모르는 기사가 갈비집으로 착각한 것이다.

지금은 천안과 평택평야의 중심지에 있던 홍경사弘慶寺비는 고려 현종 12년(1021년)에 창건된 절이다. 동국여지승람 직산현 역원조에 의하면, 교통의 요지였지만 갈대가 무성하여 도적이 출몰하므로, 고려 현종이 승려 형극에게 명하여 절을 세우게 하였다.

1016년부터 1021년까지 2백여 칸을 세우고, 봉선홍경사로 이름을 붙였다. 절 서쪽에 객관 80칸을 세운 뒤 한림학사 최충이 짓고, 국자승 백현례가 쓴 비석을 세웠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절도 원 터도 사라진 자리에 비석만 남아서 홍경사 터로 불리고 있다. 그러니 조선시대의 옛길인 삼남대로였다가 지금은 국도 1번이 지나는 길에 세워진 이 비가 우리의 귀중한 국보라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천안 홍경사 갈기비.
천안 홍경사 갈기비.
홍경사 갈기비석.
홍경사 갈기비석.

"그대에게 아주 간단한 법칙을 보여주겠네. 눈앞에 엄청난 보물이 놓여 있어도 사람들은 절대로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네. 왜 그런 줄 아는가? 사람들이 보물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글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살고 있는 바로 옆에 대단한 보물이 있어도 감쪽같이 모르는 채 살고 있다. 왜 그럴까?

“미美라고 하는 보물을 끌어오려고 하는 자는 현자賢者의 마술이라고 하는 최고의 기술이 필요하니까요‘“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한 이 말처럼 '최고의'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구성원들이 오천 년 역사 속에 갈고닦은 솜씨와 창의성으로 만들어낸 문화재 중 국보 10개도 알지 못한다면, 말 못하는 그 문화재들이 얼마나 서운해 하겠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의 구성원들이 민족의 자랑스런 유산인 문화유산을 사랑하게 될까. 간단하다. 필자는 '내 마음의 보물 갖기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상의 보물 하나를 ‘내 사랑’이라고 여기는 운동이다. 

오래전에 국가에서 '일사일산一社一山' 운동을 독려했던 때가 있었다 한 회사가 한 산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운동이었다.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제는 문화재를 사랑하는 운동을 펼쳐야 할 때다. '내 마음에 보물 하나 갖기 운동'. 그 보물은 단지 국보만이 아닌, 천연기념물이나 아름다운 옛집 혹은 정자일 수도 있다.

예를 든다면 부여의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나, 경주의 다보탑과 속가탑, 안동의 만휴정, 강릉의 경포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나 전주 전동성당이다.

그 외에도 셀 수 없다.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 여주의 영릉, 안동의 충효당, 대전 동춘당, 성종과 손순효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서울 경회루나 영남루, 촉석루, 광한루...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누구나 그중 하나를 내 마음에 보물로 지정하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곳이 여러 사람들의 보물이 되어, 일종의 팬덤현상이 된다면 그 장소에서 작은 축제를 벌여도 좋으리라. 그 보물을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가 세계인에게 소개하면 얼마나 놀랍겠는가.

"비록 나는 가난하지만 당신은 나의 보물입니다. 비록 나의 마음은 어둡지만 당신은 나의 빛입니다" -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유혹자의 일기>

마음이 어둡고, 쓸쓸할 때 이 글처럼, 가슴이 훈훈해지고, 생기가 돌며 문득 달려가서 보고 싶은 ‘내 마음의 보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 21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네 눈이 미치는 그곳에 네 보물도 있느니라.” 이 말을 바꾸면  “그대의 마음이 있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다.”가 된다.

좋아하는 대상을 마음속에 들여놓거나 모셔 놓고 사랑하면서 그리워한다면 그것이 바로 문화재 사랑이고 국토 사랑이다. 문득, 각자의 마음속 그 보물이 그리우면 한 걸음에 달려가 환한 얼굴로 바라보는 일,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신정일(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문화사학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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