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조아람기자] '반목하는 가문 때문에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비운의 연애.'

아마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릴 터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 보다 400년 앞서 같은 이야기를 쓴 작가가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위대한 문인, 니자미 간자비가 주인공이다.

이 니자미 간자비가 페르시아어로 쓴 애정 서사시 <레일리와 메즈눈>이 국내 최초로 발간됐다.

12세기 아제르바이잔 간자에서 태어난 니자미 간자비는 이슬람 문학에서 구전되어 온 이야기를 정리해 서사시로 만드는 한편, 처음으로 애정 서사시를 지어 교훈시나 영웅 서사시에 집중되었던 아랍 문학의 전통을 사랑 이야기로 전환했다. 

그의 작품은 당대는 물론, 후대의 문학, 음악, 철학, 미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이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 자신이 여종으로 하사받은 여인 아파크와 운명적인 사랑을 한 니자미는 <호스로와 시린(Khosrow and Shirin)>을 비롯한 훌륭한 애정 서사시를 여럿 창작했다. 

그중 <레일리와 메즈눈(Leyli and Majnun)>은 반목하는 가문 때문에 서로 맺어지지 못하고 비극적인 운명을 맞는 게이스와 레일리라는 두 연인에 대해 노래한다. 

'메즈눈'은 ‘미친 사람’이라는 뜻으로, 레일리에 대한 사랑으로 미쳐 버린 게이스의 별명이다. 다른 부족 족장의 딸을 사랑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개인의 사랑을 관철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힘이다. 니자미는 사랑이야말로 인간 본성이며 운명에 도전하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다.

레일리는 부유한 족장의 딸로 게이스를 사랑하게 되지만, 이슬람의 계율과 율법이 지배하던 당시 중동에서 여성은 ‘교환 가능한’ 재산일 뿐, 여성의 감정이나 자유는 허용되지 않았다. 레일리의 사랑은 용납되지 않지만, 그녀는 결혼을 강제당해서도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기를 거부한다. 

가문과 남편의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개성과 사랑을 꿋꿋이 지켜 나가며 운명에 저항하는 레일리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여성형이라 할 수 있다. 니자미는 그녀를 통해 인간의 마음이 갈망하는 순수함, 무조건적인 사랑을 노래했다.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찬미하는 한편, 봉건 사회의 질곡으로부터 여성의 해방과 자연권을 주장했던 것이다.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라민 아바소프와 호서대 한국어문화학부 김성룡 교수는 아제르바이잔 시인인 사마드 부르군(Samad Vurgun)의 현대 아제르바이잔어본을 저본으로 삼고 루스탐 아리예프(Rustam Aliyev)의 러시아어본과 브루노 카시르(Bruno Cassier)의 영어본을 참조해 가장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우리말로 읽기 쉬운 한국어본을 완성했다. 

당시의 아랍 문화에 대한 상세한 주석과 해설은 니자미의 섬세한 묘사와 함께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중세 아라비아를 무대로 한 사랑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니자미 간자비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니자미 간자비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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