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영 시집 '브로콜리 마음과 당신의 마음'

시인동네/ 2021년
시인동네/ 2021년

[더리포트=조아람기자] 강미영 시인의 시집 '브로콜리 마음과 당신의 마음'에 대한 해설이다.-편집자 주

강미영의 시가 ‘문법’과 ‘구문론’을 초월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은 음성적 자질을 활용하여 언어 자체를 더듬거리게 만드는 것, 즉 언어유희(pun)이다. 

중요한 것은 강미영의 시에서 이러한 언어유희는 일회적인 것도 아니고 유희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언어에 대한 이러한 자의식은 시집 전체에서 골고루 발견되며, 그것들은 언어에 대한 일상적 감각을 혼란에 빠뜨림으로써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만드는 기능을 수행한다. 

가령 “신파는 아니고 심판 없는 시판도 아니었다”(「새로운 유파」)에서는 ‘신파-심판-시판’의 계열이, “강정은 달콤하게 씹히는 시를 닮았고 감정을 선물 받는다”와 “난 금성이 아니고 금정 간다.”(「금성서점」)에서는 ‘강정-감정’, ‘금성-금정’의 계열이, “아파트가 아닌 아지트!”(「아지트」)에서는 ‘아파트-아지트’의 계열이,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도루묵인 것이다. 도루코 칼날의 빛이다. 그 칼날의 이마를 방망이로 쳐보는 것이다. 1루에서 3루까지 말의 허점을 통해 재빨리 달려본다. 짜릿한 도루의 묵이다.”(「도루묵」)에서는 ‘도루묵-도루코-도루’의 계열이 시 전체를 견인하는 동인(動因)으로 기능하고 있다. 

흔히 이런 언어적 감각은 단순한 유희로 오인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가 언어 예술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시가 언어로 표현된다는 단순한 사실만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세계의 질서를 해체하거나 구성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현대시에서 ‘언어’는 언어의 일상적 기능, 즉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라는 도구적 차원을 뛰어넘어 세계의 현재적 질서와 연결된다.

태양이 아래로 고개 숙이고
토마토는 멈추었다

날카로운 연애는 밋밋한 맛으로 익어가고
설탕을 켜켜이 쌓은 행간들
한 장씩 깊어진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붉은 언어들이
제각각 얼굴을 내밀고

푸른 테이블에 앉아
입이 찢어질 정도로 토마토를 먹으면
애인은 돌아올까
이빨 사이로 토마토 껍질이 붉게 피면 정말,
다시 올까
말이 되는 상상 속에 날개가 없고

토마토라고 말하는 순간
앞뒤가 같은 애인이 찾아온다

둥글게 썰어 토마토 한쪽을 귀에 걸어본다
백일몽도 물컹 터져버린다
- 「토마토」 전문

이 시의 시적 대상은 ‘토마토’이다. 그런데 ‘토마토’가 등장하는 첫 장면에는 ‘태양’이 배경이 되고 있다. “태양이 아래로 고개 숙이고/토마토는 멈추었다”라는 진술은 무슨 의미일까? 표면적으로 두 개의 사건, 그러니까 태양이 고개를 숙이는 것과 토마토가 멈추는 것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축자적으로 읽으면 태양이 고개를 숙이는 것 또한 성립되기 어렵다. 따라서 여기에서 ‘태양’은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토마토’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태양과 토마토, 시인은 시각적 연상이나 형태적 유사성에 근거하여 두 사물을 나란하게 배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추상 표현주의 화가인 마크 로스코는 “우리 사회의 정형화된 연상작용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사물들의 익숙한 정체성을 철저하게 부숴버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형화된 연상작용, 또는 정형화된 인식과 감각, 그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억압하는 것들이다. 하나의 사물을 목격하면 습관적으로 다른 하나의 사물이 떠오르는 연상작용은 사실 학습과 경험의 효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러한 질서는 이후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특정한 방향으로 왜곡한다는 점에서 억압의 일종이다. 

인간은 대상-사물을 새롭게 경험할 능력을 소유하고 있고, 우리의 경험 내용 또한 매번 다르지만, 정형화된 연상작용이나 습관 등으로 인해 낯선 경험 내용을 익숙한 것으로 환원해버림으로써 동일성에 갇히고 만다. 화가와 시인, 아니 모든 예술은 이런 익숙한 감각을 반복하지 않고 사물에서 새로운 얼굴을 찾아내려고 시도한다. 마크 로스코의 주장은 그것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시에서 ‘토마토’는 ‘태양’이라는 낯선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조명됨으로써 일상적 세계에서와는 다른 성질을 드러낸다. 물론 “설탕을 켜켜이 쌓은 행간들”, “이빨 사이로 토마토 껍질이 붉게 피면”,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붉은 언어들” 등처럼 이 시에서 ‘토마토’가 일상적 세계에 존재하는 ‘토마토’와 전혀 무관한 대상은 아니다.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때 ‘토마토’라는 기호는 하나의 암호가 되고 말 것이다.- 고봉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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