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이진수기자] <논문읽기> 소설가 채만식(1902년~ 1950년)은 고전 ‘심청전’을 새롭게 다시 쓴 ‘심봉사’라는 희곡 두 편(1936년, 1944년)을 남겼다. 소설에서 심봉사는 딸을 제물 삼아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심봉사의 욕망을 통해 본 희곡 '심봉사'의 비극적 의미>(민족어문학회, <어문논집>, 2021)는 원작의 비극성을 심봉사의 욕망과 관련 지어 대비적으로 살펴본 논문이다.

논문은 심봉사의 형상과 욕망은 1936년의 7막극과 1947년의 3막극이 상이한 양상을 드러낸다고 본다. 이어 "결말부 자해 행위의 구체적인 성격과 작품의 비극적 의미가 달라진다"고 분석했다. 자해행위란 눈을 뜬 ‘심봉사’가 다시 자신의 눈을 찔러 영원히 눈먼 자가 된다는 설정을 말한다. 

채만식의 '심봉사'(다온길)
채만식의 '심봉사'(다온길)

논문에 따르면 심봉사의 자해 행위는 일종의 서사적 징벌로서 당위성에 입각한 인과응보의 성격을 지니며, 서사 내적으로는 심봉사의 자책과 참회에 기반한 자기 징벌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양상은 비중이나 설득력의 정도에 있어서 작품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

7막극에 그려진 심봉사의 최후에서는 인과응보의 성격보다는 자기징벌적 의미가 강화된다 이는 작품의 비극성은 심봉사의 욕망이 심청의 희생을 동반함으로써 심청에 대한 곡진한 마음과 모순을 일으키는 데서 비롯된다. 

욕망의 한 목적이 애정의 실현에 있을지라도, 상황에 따라 타인의 희생을 제물로 삼는 욕망의 속성으로 인해 그것은 사랑하는 대상을 희생시킬 수 있음을 제시한다.

반면 3막극에 나타난 심봉사의 최후는 응보의 논리에 기반한 자업자득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며 자기 징벌의 의미는 오히려 약화되고, 작품의 비극성은 암흑의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욕망의 주체를 암흑의 상태로 되돌려놓는 모순으로부터 찾아진다. 

욕망을 과도하게 추구할수록 제어가 어려워지며 오히려 욕망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는 역설을 3막극은 이기적이고 몰지각한 심봉사를 내세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논문은 또 심청전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이 효 이데올로기의 논리에 해당한다면, 희곡 '심봉사'에서 그것은 욕망의 논리로 치환되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7막극과 3막극의 서사를 지배한다고 본다.

 요컨대 '심봉사'는 욕망이 야기하는 모순과 역설을 통해 사랑하는 대상을 희생시키거나 주체를 파멸로 몰아넣는 욕망의 본성을 문제 삼고, ‘어둠→빛→어둠’으로의 이행 구조에 기반하여 욕망을 지닌 개인이 처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운명을 제시한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 비극의 ‘피할 수 없는 운명’과는 또 다른 필연의 사슬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채만식의 '심봉사'는 비극으로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는 것.

논문은 "채만식은 ‘욕망하는 심봉사’의 창조를 통해 욕망의 문제에 천착함으로써 고소설 심청전에 투영된 기존의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의문을 극의 형식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심봉사"는 심청전의 현실성을 갱신하며 패러디로서의 의의를 획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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