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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창] 세상에 그런 모정(母情)은 없다
[사색의 창] 세상에 그런 모정(母情)은 없다
  • 황정자
  • 승인 2021.10.16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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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자 님

"언니 오늘, 세미원에 가실 수 있어요?"

명옥 씨의 전화를 받고 바로 “콜” 했다. 시니어 사진 반 동기인 그는, 나와 달리 꾸준하고 열심히 출사를 다녀, 지금은 시에서 운영하는 한 지역의 '시민 사진 강사'가 되었다. 게다가  얼굴도 예뻐서 출사 때는 인기 모델이 되기도 하는, 겉과 속이 두루 멋쟁이다. 두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날 뿐인데도, 번개팅 제안을 하는 데에는, 서로에게 믿는 구석이 은연중 깔려 있기 때문이었고 나는 그런 청에도 망설이지않고 달려 갔던 것이다.   ​

세미원의 드넓은 연꽃 밭과 보도 위에 쏟아지는 초여름의 햇살을 가르며  명옥 씨는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다니고, 장비 대신 먹을 것만 급히 챙겨서 나선 나는, 명옥 씨 덕분에 정자 그늘에 앉아, 연꽃을 바라보며 모처럼 망중한의 호사를 누렸다. 명옥 씨는 강남의 대표적인 부촌에 그것도 큰 평수의 아파트에 산다. 남편과 사위를 비롯한 가족들 모두의 사회적 지위가 사는 곳의 조건 못지않는 명실상부한 중산층이다.

그런 명옥 씨가 돌아오는 길에 뜬금없이 "언니, 이자 많이 주는 은행 좀 알려 주세요." 했다. 명옥 씨에게서 그런 말을 듣게 될 줄 꿈에도 몰랐던 터라, 핸들을 잡고 앞만 주시하고 있는 그의 옆얼굴을 나는 당황한 채 바라보았다. 명옥 씨는, 웃느라고 생긴 얼굴의 주름을 펴고는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주식으로 엄청난 돈이 생긴 명옥씨의 언니가, 1천 만 원을 들여 얼굴을 폈는데, 이모의 달라진 모습을 본 명옥씨의 두 딸들이 "엄마도 이모처럼 하세요" 하며 같은 액수의 돈을 모아 엄마에게 주었다고 한다.

명옥 씨는 딸들의 효심을 마음에 안고 성형외과 대신 은행으로 갔다. 그런데 이자가 너무 적어졌더라며 나를 만난 김에 물었던 것이다. 나는 돈을 묻어 두지 못한 처지라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귀동냥으로도 추락 수준인 시중 이자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며칠 전 새마을 금고 정문 앞에, <년 2.2% 한시적 적금 특판> 이란 광고가 대문짝만 하게 붙어 있던 것이 기억나, 그 말을 해 주었다. 하지만, 마감 일은 기억나지 않다고 했더니 명옥 씨는 마감일을 꼭 알아 달라고 두 번이나 당부 했다.

명옥 씨와 헤어져 먼저 새마을 금고로 갔다. 다행히 마감일이 다음 주까지였다. 나는, '호외' 라도 뿌리 듯 호들갑을 떨며 선 자리에서 명옥 씨 에게 낭보를 전했다. 명옥 씨는 당장에라도 달려 올 듯 한 기세로 "그래요?" 하며, 부탁 할 때처럼 고맙다는 말을 또 두 번이나 했다. ​

다음 날, 적은 이자를 주는 은행에서 빼 낸 돈을 들고 명옥 씨가 우리 동내로 왔다. 새마을 금고로 명옥 씨를 안내 하고 객석에 앉아, 창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기에, 세미원을 나오기  이전의 그가 아닌 또 다른 한 사람 명옥 씨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의 뒷모습에서 평소에는 몰랐던 그의 진면목을 보았다. 나는 그동안 그의 한 길 마음속의 있던 하나는 몰랐던 것이다. 

딸들이 준 돈이 아니라도 하려고 들면 얼굴 펴는 것쯤은 문제가 아닐 줄 알았던 그는, 정확히 년 122.000 원을 더 준다는 바람에 다른 동내까지 달려 온 것이다. 명옥 씨와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은 한 달에 만 원을 벌자고 그런 수고를 하지 않을 액수지만 명옥 씨는 122.000 전체를 생각했다. 우리 어머니에게서 자주 듣던, '한 모를 막을 수 있는 돈' 의 개념이 그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명옥 씨가 가슴에 안고 온 돈이 어떤 돈인가. 주부들이 가장 편하고 당연하게 쓸 수 있는 남편이 준 돈이 아니고, 자신이 번 돈도 아니다. 자식, 그것도 살림하는 딸들이 준 돈이다. 세상에는, 자식의 돈을 쉽게 써 버리는 무정하고 안이한 모정이란 없다. 부촌의 모정도, 달동내의 모정도 하나로, 끝 간 데 없는 것이 모정이다. 그날 명옥 씨는 점심으로 나에게 갈비탕을 샀다. 그리고 맛이 있다며 두 개를 포장해 가느라고 모두 6만 원을 썼다. 일 년 후에 더 받을 액수의 절반을 한 순간에 써 버렸다. 그는 '돈이란 최소한의 곳에도 쓰기 위해 최대한으로 아끼는 것' 임도 알고 있은 멋쟁이었다. 

명옥 씨는, 부자 언니를 따라가지 못해서 얼굴을 펴지도 못하는 뱁새도 아니고, 년 12만원 남짓을 벌기 위해 강 건너 동내 까지 오는 쫌생이 수전노도 아니고, 돈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더욱이 자식의 돈을 아프게 여기는, 크나 큰 황새였다. <황정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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