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조아람기자] '당신이 먹은 음식에는 누구와의 이야기가, 어떤 맛과 순간이 담겨 있나요?'

요리사를 꿈꾸었던 한 젊은 여성이 식탁에서 써 내려간 음식-추억의 기록 <입가에 어둠이 새겨질 때>(김미양. 두두 2021)가 묻는 질문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20살이 될 무렵 육지로의 탈출을 감행했다. 영화〈브루클린〉의 주인공이 아일랜드를 떠나 대도시로 향하는 배에 올라탔던 것처럼.

멋진 요리사가 되는 꿈을 꾸며 도시로 나갔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자주 괴롭고 외롭고 또 헛헛했다. 그럴 때마다 고향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1년, 2년이 흐르고 어느덧 10년이 넘게 지난 어느 날, 저자가 거울에서 발견한 것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얼굴을 꼭 닮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세계가 자신의 한 축을 단단히 지탱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녀는 한결 홀가분해졌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어둠을 부정하기보다는 그것을 끌어안고 그 속에서 다른 의미들을 찾아내며 지내보기로 했다. 

이때 그녀를 찾아온 것이 ‘글’이었다. 요리를 짓던 마음으로 글을 지으며 과거를 다시 바라보는 작업을 이어갔다.

“한때 요리사를 꿈꾸었던 사람에게 남은 유일한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쓰고 짜고 매운 양념과 달고 고소한 양념이 조화롭게 섞일 때, 비로소 삶은 더 진한 맛을 낸다는 것. 저는 이제 추억을 요리하는 사람이 되어 밥 대신 글을 짓습니다.” (Invitation 중에서)

책에는 그녀를 위로해 주었던 ‘따스하고 보드라우며 애틋한’ 음식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 음식들에는 제주의 바다와 바람 소리가, 여러 지역에서 자취하며 만나게 된 계절과 사람들, 또 거기에 곁따라 생겨난 다양한 기분이 담겨 있다. 특히 책에서 중요하게 이야기되는 것은 ‘가족’이다. 

“오래전 그날, 나는 아버지의 문어 한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는 문어는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있었다. 아무리 질겨도 오래오래 씹다 보면 어느 순간 배어 나오는 문어의 감칠맛. 세상엔 그렇게 오래도록 씹어야만 제맛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버지의 투박한 표현 속에 담긴 진득한 사랑이 이제 와서야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처럼. 나는 아직도, 아버지와의 관계를 소화시키는 중이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맛과 향, 시간과 사람에 얽힌 추억이 넘실대며 교차하는 글들에서 독자 역시 몸과 마음에 깊숙이 새겨져 있는 음식들을 떠올려 보라고 권한다.

"당신을 위로해 준 다정한 음식이 있나요? 어둠이 내린 마음에 한 줌 빛이 되어 준 맛과 기억 그리고 가족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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