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9-19 16:26 (일)
'의도적, 지속적, 정책적' 문학도시로 자리잡는 세가지 요인
'의도적, 지속적, 정책적' 문학도시로 자리잡는 세가지 요인
  • 김태우 기자
  • 승인 2021.08.03 23: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쓰야마의 노천탕 오쿠도고 이치유노모리. (출처:아고다)

[더리포트=김태우기자] < 논문읽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도고(道後) 온천이 있는 도시.' 바로 마쓰야마를 말한다. 일본 시코쿠(四國) 북동 해안 에히메 현(愛媛縣)의 현청 소재지다. 

마쓰야마는 온천의 도시로 유명하나, 다른 한편 문학의 도시로도 잘 알려져있다. 나쓰메 소세키 의 소설 <도련님>, 그리고 이나 마사오카 시키의 하이쿠의 무대로 유서깊다.

이 마쓰야마는 어떻게 문학도시 하이토(俳都)가 되었을까.

<문학도시 ‘하이토(俳都)’ 마쓰야마(松山)의 형성 과정에 관한 고찰>(한국일본근대학회, "일본근대학연구', 2021)은 그 배경과 요인을 탐구한 논문이다. 

논문은 마쓰야마가 문학도시 이미지를 구축해 나간 과정을 통시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근대 발간된 안내서를 통해 하이쿠의 도시로 창출되는 과정을 확인하고, 나아가 전후 ‘하이토’의 장소성을 어떻게 계승해나갔는지를 살폈다. 

논문에 따르면 마쓰야마의 지역 안내서는 1900년대 중반부터 주로 하이쿠를 창작하는 시인들이 중심이 되어 집필되었다. 이어 안내서 속 명소마다 해당 장소와 관련된 하이쿠를 게재하면서 마쓰야마가 근대 문예 하이쿠의 탄생지라는 것을 인식시켰다. 

애초에 하이쿠 시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하이쿠가 수집되고 안내서가 서술되었다는 점에서 문학성이 강한 안내서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논문은 본격적으로 마쓰야마가 ‘하이토’로 표상되는 때는 1930년대 후반 1940년대 즈음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지는 논문 내용이다.

"이 시기에는 과거 마쓰야마 명소 목록에 없었던 시키나 소세키와 관련된 유적지가 명소로 포함되고 있으며 ‘하이토’라는 용어가 실질적으로 사용되었다. 

전후에도 마쓰야마는 ‘하이토’의 이미지를 계승 확대시켰다. 전쟁 직후 곧바로 소실된 시키당을 재건하고 이를 사적으로 지정했으며, 시키의 문인이었던 교쿠도, 교시 등이 중심이 되어 시키를 우상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와 함께 마쓰야마에 사는 시키 문인들이 하이쿠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시비를 짓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마쓰야마는 ‘하이토’의 역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또한 1980년대에는 시키기념박물관을 건립, 1990년대에는 하이쿠 창작과 관련된 행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문학도시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다."

논문은 마쓰야마의 문학도시 이미지메이킹 원인를 "어느 한 시점이 아닌 시대를 거쳐 지역 문인들이 의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한편으로 지자체와 주민들이 정책적으로 경제적으로 뒤받쳐 준 결과"로 풀이했다.

원주-박경리, 춘천-이외수와 같은 문학도시로 새롭게 자리매김 하려는 지자체가 있다면, 이 논문을 참고하여 일본 마쓰야마 사례를 분석하면 도움이 될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