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은 예전엔 텍스트의 의미를 정밀하게 파악하기 위한 독서의 한 방법이었다. (사진=픽사베이)

[더리포트=이진수 기자] <논문읽기> 과거 관료를 뽑기 위한 시험, 과거제가 암송의 기능을 독서법이 아닌 작문법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색 주장이 있다.

<‘암송(暗誦)’의 독서론적 의미-The Significance of Recitation in Reading>(국제어문학회 국제어문 88권, 2021)는 독서법으로 권해지는 암송의 오용(誤用)을 파헤친 논문이다. 암송(暗誦)은 글을 보지 아니하고 입으로 외우는 행위를 말한다.

논문에 따르면 암송을 독서법으로 체계화한 이는 송대 유학자 주희다. 그는 암송을 텍스트의 의미를 정밀하게 파악하기 위한 주석적 독서의 방법으로 제시하였다. 쉽게 말하면 책을 정독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암송을 권한 것이다.

그러나 논문은 왕권 강화를 위한 과거제가 암송의 기능을 독서법이 아닌 작문법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과거제를 통과하려면 당연히 독서가 필수였다. 과거제는 문장 쓰는 능력을 시험하는 제술과와 유교 경전의 이해 여부를 시험하는 명경과 두 과목으로 치러졌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글쓰기 능력을 우선시한 제술 중심으로 운영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그로 인해 깊이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을 뽑기 위한 제도였던 과거제 본래 의도와는 달리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중의 하나가 오직 과거를 위해 텍스트를 무조건적으로 암송하는 경향이라는 지적이다. 즉 독서인들은 텍스트에 대한 깊은 의미 파악을 위한 독서보다는 과거 시험에 나올만한 글들을 모은 초집 등의 암송에만 힘을 쏟게 되었다는 것.

결국 작문, 즉 글쓰기를 위한 방법으로 행해졌던 암송이 시간이 흐르면서 독서법인 양 굳어지게 되었으며 오늘날에, 암송이 현대에 우리가 되살려야 할 독서법으로 추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논문는 암송의 원래 뜻과 뒤바뀐 쓰임새의 과정을 탐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과거제는 독서의, 매우 중요한 하나의 방법을 문장 강화라는 축소된 영역으로 전락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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