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선비들은 몸의 노화를 성찰과 새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방편으로 삼았다. (사진=픽사베이)

[더리포트=이진수 기자] <논문 읽기> “백발이 섧고 섧다. 백발이 섧고 섧네.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다.”

남도소리 <백발가(白髮歌)>의 서두 부분이다. 보통 이 백발가는 늙음의 서러움과 인생무상을 노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삶에 대한 긍정을 노래하고 있다.

“야야 친구들아 승지강산(勝地江山) 구경가자, 금강산 들어가니 처처(處處)이 경산(景山)이요 곳곳마다 경개(景槪)로구나”

<노년의 몸과 유교적 성찰>(종교문화비평, 2021년)은 늙음과 늙음의 현상을 ‘유교적’으로 해석한 흥미로운 논문이다.

논문은 조선시대의 유자(儒者)들이 몸의 노화 현상을 경험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방식을 살폈다.  흰머리와 어두워진 눈, 빠진 이빨이 몸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기능에 따라 각각의 의미 부여와 대응 방식을 구분한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백발(白髮)’은 인의(仁義)에 기초한 맹자(孟子)의 왕도정치(王道政治)에서 자발적인 공경과 돌봄의 대상을 나타냈다. 그런데 조선의 유자들은 이러한 흰머리를 죽은 뒤에도 보존해야 하는 부모에 대한 효도나 임금에 대한 불변의 충성 등 윤리적, 정치적 가치로 채색하였다.

특히 노년의 머리털은 한편으로는 목숨보다 소중한 중화(中華) 문명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반면 다른 한편으로 흰머리마저 빠진 노년의 대머리는 문화적 관습이나 구속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의미로 해석되었다.

또한 눈이 어두워지면 유자들은 외향적인 차원에서 산수(山水)의 풍광(風光)을 즐기거나 화초(花草)처럼 일상의 미세한 사물로부터 삶의 활기(活氣)를 얻고자 노력하였다. 다만 그들은 시력을 회복시키는 안경(眼境)에 의존해서라도 궁리(窮理)의 대표적인 방법인 독서(讀書)를 통해 학문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에 중점을 두었다. 더 나아가 외부의 시각적 자극을 차단하는 ‘정좌(靜坐)’는 마음의 본체인 신성한 본성에 다가가 삶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 내향적 공부로 실천되었다.

이어 이빨이 빠지는 현상은 노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긍정하고 기존의 삶의 방식에 대해 성찰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를테면 얼굴의 변형은 타인과의 관계를 줄여 고요한 삶에 나아가게 만들고, 대화할 때 발음이 새는 문제는 침묵을 지키거나 내면의 마음을 살폈다. 또한 음식 섭취의 어려움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 전환점이 되었다. 특히 몸에서 분리된 이빨에 대한 성찰을 통해 천지의 조화를 이해하고 외물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이치에 순응하는 도덕적 주체성을 자각하기도 하였다.

논문은 “조선의 유자들은 늙은 몸에 관한 다양한 성찰과 마음의 상대적 자율성에 기초해서 늙음을 비루하게 탄식하거나 망령되게 망각하지 않고 자연스런 삶의 과정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안로(安老)’의 지혜를 보여주려 노력하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어 “젊음과 늙음의 극단적 대립과 갈등을 강조하여 노년을 전면 부정하거나 차별하는 담론을 벗어나 젊음과 늙음의 대대(待對) 관계에 기초해서 노년의 공공성(公共性)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늙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장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현명한 이들이라면 선인들이 노화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을 듯싶다.

 

저작권자 © 더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