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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포트=정미경 기자] 많은 글들 중에서 특히 시는 소리내어 읽어보면 그 이해도와 감동이 다르다. 작가 정여울은 <소리내어 읽는 즐거움>(홍익출판사. 2016)에서 자신이 매일 하고 있는 것이 ‘좋은 글 소리내어 읽기’라며 아래의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러면 젖은 땅을 엉금엉금 느리게 걸어가는 달팽이의 애잔한 모양새가 떠오를 것이라고. 이어 우리에게는 달팽이처럼 소리치지도 엄살 부리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고통을 참는 약한 것들의 서글픔을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전한다. “달팽이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험한 세상 어찌 살까 싶어서이다. 개미의 억센 턱도 없고 벌의 무서운 독침도 없다. 그렇다고 메뚜기나 방아깨비처럼 힘센 다리를 가진 것도 아니다. 집이라도 한 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시늉만 해도 바스라질 것 같은 투명한 껍데기. 속까지 비치는 실핏줄이 소녀의 목처럼 애처롭다.달팽이는 뼈도 없다. 뼈도 없으니 힘이 없고 힘이 없으니 아무에게도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물며 무슨 고집이 있으며 무슨 주장 같은 것이 있으랴. 그대로 ‘무골호인’이다. 여리디 여린 살 대신에 굳게 쥔 주먹을 기대해 보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그렇다고 감정마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감하기로는 미모사보다 더하다. 사소한 자극에도 몸을 움츠리고 이마를 스치는 바람에도 고개를 숙인다. 비겁해서가 아니다. 예민해서요 수줍어서이다. 동물이라기보다 식물에 가깝다.누구를 찾고 있는 것일까?달팽이는 늘 긴 목을 치켜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그의 이웃은 아무 데도 없다. 소라, 고동, 우렁 그리고 다슬기 같은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의 이웃이 아니다. 아득히 먼 물나라의 시민들이다.모든 생물이 다 그러하듯 달팽이의 고향도 바다였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먼 조상들 중 호기심이 많은 한 마리가 어느 날 처음 뭍으로 올라왔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물달팽이가 육지 달팽이로 바뀌는 기구한 역사가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다.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육지에 사는 달팽이의 목과 눈은 물달팽이의 그것보다 훨씬 가늘고 길다. 슬픔도 내림이라, 수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조상들의 슬픔으로부터 그들은 자유로울 수가 없는 모양이다. 실향민의 후예. 달팽이는 늘 외로움을 탄다. - 손광성, <달팽이> 중에서” (p.51~p.52)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집을 짊어지고 다니는 착하고 순한 달팽이. 달팽이처럼 자신의 등짝으로 옮길 수 있는 크기의 집을 우리가 원하고 산다면 얼마나 간결하고 소박하며 평온한 삶일까. 강하고 크고 많은 것을 원하는 우리는 달팽이를 통해 잠시나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다.

삶의 향기 | 정미경 기자 | 2017-01-25 14:00

[더 리포트=정미경 기자] 역시나 공지영 작가의 에세이 <시인의 밥상>(한겨레출판사. 2016)은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준다.제목에서 말하는 ‘시인’이란 2010년에 발표한 그녀의 전작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에도 등장했던 ‘자갈치 시인’을 말한다. 그의 본명은 박남준이다. 이번 책은 지리산에 살고 있는 박시인이 친구들에게 대접하는 소박하지만 따듯하고 구수한 요리에 얽힌 이야기다.전주의 '새벽강'이라는 술집에서 굴전을 먹을 때의 일이다. 버들치 시인이 전주에 가면 꼭 보곤한다는 한 건축가가 함께한 자리. 그 건축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다.그는 십여 년 전 미국의 금융위기 때 쫄딱 망해서 모든 것을 다 잃었다. 그때 채권자들을 피해서 지리산 버들치 시인 집으로 갔다. 그런데 시인은 ‘생명 평화 순례’를 하느라 집에 없었다. 밤 11시쯤 시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밤에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달려왔다.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 자고 일어난 아침.시인은 안보이고 그에게 전화가 왔다. 시인은 ‘어디 어디 돌을 들어봐라, 거기 뭐가 있을 건데 그러면 다 안다’고 말했다. 건축가가 그 돌을 들어보니 편지봉투 속에 편지와 1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내가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하면서 ‘힘들더라도 절대 굶지 말고 이걸로 짜장면이라도 사 먹고 다녀’라고 쓰여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돈은 시인의 전 재산이었다.“듣고 있던 버들치 시인이 끼어들었다.“아니여, 전 재산 아녀. 내가 4만 원은 떼었어. 전기세가 밀려 있어서.”건축가는 버들치를 보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이 숙맥이 내가 100만 원도 없는 줄 안 거야. 아무리 망해도 그건 있었는데.”건축가가 다시 말했다.“내가 그 편지 간직하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그랬어요. 아빠는 그리 잘 살지는 못했지만 이런 친구는 있다, 그랬죠. 물려줄 거예요, 그 편지.”" (P.72)천문학적인 숫자의 나랏돈을 자기 통장에 넣어두고 호의호식하던 사람들. 그들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남을까.버들치 시인의 친구들은 말한다. 언제든 “버들치가 오라면 와, (가던 길도) 유턴해서 바로 와. 여기도 권력이야. 임기 5년 짜리에 비할 수 없는 권력이지. 암, 권력이고말고.” 글을 읽는 이들의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번진다. 

삶의 향기 | 정미경 기자 | 2017-01-09 18:29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선물이 비쌀 필요는 없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작은 꽃씨 두 개로 감동을 선물한 할머니 이야기가 있다.젊은 부부가 시골에서 살았다. 공방을 운영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기특해서일까. 동네 할머니들이 집 앞에 상추, 가지, 오이, 호박을 마당에 던져 놓고 갔다. 어떤 날은 아이 먹이라며 떡, 과자, 요구르트를 살짝 놓고 갔다.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부부는 미안하면서도 할머니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어느 날, 부부는 공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밤나무 건너편에 사시는 연탄 쌓아 둔 집 할머니가 오셔서 말씀하셨다. "얼마 전, 새댁 마당입구 돌 세워진 자리 아래 국화 꽃씨 두 개 심어 놓았어."남편이 물었다.   (adsbygoogle = window.adsbygoogle || []).push({}); "왜 심으셨어요?"할머니는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꽃 피면 예쁘게 보라구. 꽃씨 필요하면 우리 집에 와서 더 가져다 심어."씨앗 하나가 부부 가슴에 들어와 꽤 낯선 감정 하나를 일으켰다. 거칠고 힘없는 할머니 손으로 꽃씨 두 개를 남의 집 마당에 꽃씨를 심어 놓고 환하게 웃으셨을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했다. 할머니처럼 예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꽃씨 두 개를 깜짝 선물로 심어 놓으신 할머니. 할머니는 부부를 위해 꽃씨를 심었지만 할머니 마음이 더 행복했을 것이다. 남에게 행복을 주는 일은 곧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 아닐까.이 내용은 <가족의 시골>(김선영 글.사진.마루비.2015)에 담긴 이야기를 재구성하였습니다.[화이팅뉴스는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7-01-06 07:11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21세기 살아 있는 팝음악의 전설로 불리는 퀸시 존스. 그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위 아더 월드(We Are The World)' 작곡가다.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만들 수 있는 감성은 절망에서 싹텄다.미국 시카고의 흑인 빈민가에 한 소년이 살았다. 소년의 눈에 보이는 것은 시체더미와 갱들 뿐이었다. 아이들은 본대로 배우고 자란다. 소년도 힘센 갱(gang)이 되고 싶었다. 7살 소년은 생존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소년은 늘 배가 고팠다. 어느 날, 음식을 훔쳐 먹기 위해 남의 창고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피아노를 처음 보았다. 만져보았다. 순간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온 몸의 세포가 하나하나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때 음악이 운명처럼 다가왔다.가난, 양어머니, 폭력, 엄마의 정신병원 입원... 소년이 감당하기엔  모두 버거운 일이었다.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소년에게 들리는 건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들리는 갱들의 총소리 뿐이었다.소년은 고통스러운 일이 닥칠 때마다 집에 있는 옷장 안에 들어갔다. 고사리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힘껏 감았다. 그러면 우울하고 아픈 현실이 아름답고 빛나는 전혀 다른 색깔로 바뀌었다. 깜깜한 현실을 음악과 창조에 대한 에너지로 바뀌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그는 음악의 ‘음’자도 모르다가 음악을 발견하고 완전히 미쳤다. 음악을 배우지 못했다. 트렘펫을 어떻게 부는지 몰라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불었다.음악을 사랑해서 미쳐 있다보니 음악을 알게 되었다. 당시엔 텔레비전도 MTV도 없었다. 음악을 들을 곳도 없었다. 악보를 배운 것도 아니고 악기도 없었다.그는 음악을 듣기 위해 레코드가게에서 하루 종일 서 있기도 하고 학교 밴드에서 혼자 악기를 배웠다. 한 번은 삼 일 밤낮을 꼬박 작곡에 달렸다. 음악에 빠져 있다보니 잠을 안 잤다는 것을 잊었다. 눈에서 피가 났다. 이때 14살에 생애 처음으로 작품 <From the Four Winds>를 만들었다. 이후 프로패셔녈한 음악가의 세계에 들어갔다.그는 60년 동안 음악을 하며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에게 불행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 없었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삶이 힘들다면 잠시라도 현실을 다르게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 내용은 <크리티컬 매스>(백지연 지음. 알마)에 나오는 이야기를 편집 재구성하습니다.[화이팅 뉴스는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11-02 11:25

[더 리포트=박세리 기자] 경비원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을 선물로 주고 사소한 일에 행패를 부리는 등 이른바 몇몇 어른들의 ‘갑질 횡포’는 같은 어른이라는 게 창피한 일이다. 이에 보란 듯이 한 편의 글로 경비원 일자리를 지켜낸 초등생이 있다.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은 스무 명이다. 그런데 어느 날 구조조정 소식이 날아든다. 인력 중 열 명을 줄이겠다는 안내문이 붙는다. 그러자 단지 안 엘리베이터에 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이런 글을 붙였다.‘경비원을 줄이지 마세요. 경비 아저씨들은 눈이 올 때 우리를 대신해서 눈을 쓸어주시고 무거운 짐을 들어주시는데, 경비원 아저씨들이 우리와 같이 살 수 있게 해주세요. 혹시 비용이 더 든다면 우리들이 좀 더 내면 안 되겠습니까?’초등생의 글을 본 어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일렁이는 잔잔한 물결, 바로 그 감동이 있었을 터다. 진심 어린 초등생의 한 편의 글은 결국 주변의 공감을 불러모아 경비원 구조조정 계획까지 철회시켰다. 경비원들의 일자리를 지켜낸 것.그런가 하면 서울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의 사례도 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에너지 자립마을 운동을 벌여 3년간 단지 내 전기 비용을 무려 4억 원가량 줄였다. 놀라운 점은 주민들이 이 돈으로 아파트 경비원들의 임금을 15% 올려주었다는 사실이다.두 이야기가 전하는 바는 ‘온정’이다. 누구나 전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모이면 이렇듯 커다란 힘으로 나타난다. 바로 공동체의 힘이다. <도시의 발견>(메디치미디어.2016)에 등장하는 사연을 편집 재구성한 이야기다.[화이팅 뉴스는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의 향기 | 박세리 기자 | 2016-10-27 14:11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갖은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시골 마을에서 노인과 늙은 소가 밭을 갈고 있었다. 노인 이름은 푸구이다. 쟁기질을 하던 소가 피곤해 쉬려했다. 이때 푸구이가 큰소리로 외쳤다."얼시! 유칭! 게으름 피워선 안 돼. 자전! 펑샤! 잘하는구나. 쿠건! 너도 잘한다."지나가던 행인이 물었다. "저 소는 이름이 몇 개인가요?"그러자 푸구이가 말했다."이 소의 이름은 푸구이야. 왜 여러개의 이름을 불렀느냐 하면 소가 자기만 밭을 가는 줄 알까 봐 이름을 여러 개 불러서 속이는 거지. 다른 소도 밭을 갈고 있는 줄 알면 기분이 좋을 테니 밭도 신나게 갈지 않겠소?"소의 이름도 '푸구이'라니 재미있다. 두 푸구이의 사연은 이렇다.푸구이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젊은 시절 도박으로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렸다. 성 안에서 쫓겨나 성 밖에서 입에 겨우 풀칠만 하면서 살았다. 굶는 날도 많았다.이후 마음의 병을 얻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금쪽 같은 아들 유칭은 피를 팔다가 의사의 실수로 죽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펑샤는 열병을 앓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다. 늦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다 죽었다. 고생으로 병을 앓던 사랑하는 아내 자전이 죽었다. 사위 얼시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죽었다.푸구이는 하나 남은 가족인 외손자 쿠건과 의지하며 살았다. 외손자에게 소를 사주고 싶어 열심히 돈을 모았다. 하지만 행복은 짧았다. 외손자마저 자신의 실수로 죽었다. 푸구이는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묻어주는 아픔을 겪었다.푸구이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소를 사고 싶었다. 소시장에 가는 길이었다. 한 마을에서 사람들이 모여 늙은 소를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늙은 소는 죽음을 앞두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푸구이는 죽도록 일만 하고 마지막에는 잡아 먹히는 소가 안쓰러웠다. 어린 소를 사는 대신 늙은 소를 샀다. 남들은 길어야 2~3년 밖에 살지 못할 소를 산 푸구이를 비웃었다.푸구이는 남들이 뭐라하던 늙은 소를 가족처럼 여겼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자신을 쏙 빼닮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름을 '푸구이'라고 지었다. 남들도 둘을 꼭 빼닮았다며 놀라워했다. 노인과 소는 예상보다 오래 살고 있었다.소와 노인의 인생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주어진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살아간다는 것은 아프고 거친 운명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아가는 것 아닐까.이 내용은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위화 지음.푸른숲.2008)의 내용을 편집 재구성하였습니다.[화이팅 뉴스는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9-30 15:19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행복의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다. 돈, 관계, 외모, 학벌, 직업. 그 중 빵을 만들면서 행복을 가꾸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서른의 남자가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대학에서 무기재료를 전공해서 자재 관련일을 했다. 회사에서도 능력있는 직원이었다.어느 날, 그는 자신의 진로를 고민했다. 십 년이 지나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자신이 없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문득 잊을 수 없는 빵이 떠올랐다. 중학교 시절, 가출했을 때였다. 고향 충남 공주의 깊은 산속에 들어갔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기도원 옆에 기거하는 노인 한 분이 함석판을 잘라 만든 빵틀에 밀가루 반죽을 부어 아궁이에 넣었다. 놀랍게도 따끈따끈한 식빵이 나왔다. 정말 맛있었다. 서른에 빵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남자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자 사장은 말렸다. 6개월 동안 사표를 수리 하지 않았다. 유능한 직원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빵을 만들겠다는 모습이 위험해 보였으리라.남자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빵을 배웠지만 재미있었다. 몸에 좋은 건강한 빵을 만들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가 이태원에 천연발효종으로 만든 빵가게를 열었을 때 전에 일하던 회사 사장이 찾아왔다. 잔돈으로 바꿔 줄 때 쓰라며 빳빳한 천 원짜리로 백 만원을 건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그때 끝까지 말렸으면 어쩔 뻔했나 싶구만. 빵 만들고 있는 걸 보니 잘한 일 같다."남자에게 빵가게는 놀이터이자 인생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작업실이다. 덤으로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어 행복하다.행복은 누가 손에 쥐어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늦었으면 어떤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인지도 모른다.이 내용은 <수상한 주인장>(넥서스북스.2011)에 나오는 '아궁이에 구운 함석판 식빵의 추억'의 내용을 편집, 재구성하였습니다.[화이팅 뉴스는 세상을 물들이는 환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9-28 10:17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마음에도 결이 있다. 결이 고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품어주는 힘이 있다. 여자친구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정리한 청년의 이야기가 있다.청년은 삶에 지쳐 있었다. 그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다.청년이 태어나기 전, 사업 실패로 집을 나간 아버지가 십오 년 만에 중풍에 걸려 집으로 오셨다. 엄마는 아버지 병간호를 하다 과로로 먼저 돌아가시고 말았다. 중학생 때부터 아버지를 보살펴 드리는 일은 청년의 몫이었다. 더구나 아버지의 치료비는 청년의 빚이 되어 차곡차곡 쌓여 갔다. 청년은 억이 넘는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직도 힘들었다.그런 청년에게도 핑크빛 사랑은 찾아왔다. 하지만 하루하루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청년에게 사랑은 사치 같았다. 하루는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자신이 사는 모습을 보면 여자 친구가 자연스럽게 떠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여자친구랑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빈집에 홀로 누운 아버지가 대소변을 누워서 해결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이었지만 냄새를 참을 수 없었다.창피한 마음에 여자친구 반응을 살폈다. 예상과 달리 여자친구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팔을 걷어 부치고 아프신 아버지를 부축해서 욕실로 모시고 갔다. 그리고 목욕을 시켜드리는 것이었다. 청년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물었다."지금 뭐하는거야, 왜 그러는데?"여자친구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오빠도 우리 부모님 아프시면 이렇게 해드릴거잖아."청년은 눈시울이 뜨거웠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아프신 아버지께 모진 말로 상처도 주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 올라 제대로 보살펴 드리지도 않았다. 아들도 나몰라라하는 아버지를 여자친구가 목욕을 시켜 주고 살갑게 대하는 모습에 깊은 반성이 들었다.'남의 부모도 저렇게 해드리는데 아들인 내가 무심했구나.'청년은 그날 이후,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었다. 아버지는 오히려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글로 써서 말했다. 부자 간에 아픔을 털어 냈다. 얼마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청년은 여자친구가 고맙다. 여자친구가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면 아버지에게 용서도 구하지 못하고 보내드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한은 평생 가슴에 남았을 것이다.사랑은 여러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예상치 못한 색깔로 다가오는 것이 사랑 아닐까. 사랑이 있기에 얼음 같은 외로움도 견뎌낼 수 있으리라.이 내용은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 소개된 최승원 요리연구가의 사연을 편집 재구성하였습니다.[화이팅 뉴스는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9-26 14:33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따뜻한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되는 날이 있다. 그 한 마디는 살아가면서 큰 힘이 된다. 우리가 들었던 잊지 못할 따뜻했던 말은 무엇이 있을까.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소년이 있었다. "너는 아빠가 없지?"동네 아이들이 소년을 놀리곤 했다. 그때마다 소년은 기가 죽기는 커녕 당당하게 물었다."아빠 없는 게 내 잘못이가?"친구들은 꼬리를 내며 말했다."그건 니 잘못이 아니지."소년은 씩씩하게 자랐다. 소년이 아버지가 없는 것보다 속상했던 건 한 겨울에 타는 썰매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아버지나 형이 만들어 준 튼튼한 썰매를 타고 놀았다. 하지만 소년은 엄마와 누나들만 있었기에 썰매를 만들어 줄 사람이 없었다. 엄마와 누나들은 소년의 썰매에 신경을 못 썼을 것이다.썰매를 타고 싶었던 9살 소년은 낑낑 대며 나무를 자르고 망치로 못질을 하며 철사를 끼워 썰매를 만들었다. 고사리 손으로 만들어 부실했다. 친구들 앞에서 기죽기 싫었던 소년은 썰매 타는 걸 포기했다. 동네 친구들에게는 썰매 타는 걸 싫어한다고 핑계 대고 강에 나가지 않았다. 혼자서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놀았다.그러던 소년에게 썰매를 만들어 준 사람이 나타났다. 큰누나가 결혼할 매형이랑 집에 인사를 온 것이었다. 과묵한 전라도 매형은 소년이 만들다 처박아 둔 어설픈 썰매를 보더니 한 마디 했다."처남, 철사 사와"소년에게 감동적인 말이었다. '내가 튼튼한 썰매 만들어 줄께.' 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았던 재동은 우샤인 볼트보다 더 빨리 뛰어가 철물점에서 철사를 사왔다.매형은 솥뚜껑 같은 손으로 썰매 두 대를 뚝딱 만들었다. 한 대는 양반다리를 하고 탈 수 있는 썰매로 자동차로 말하면 세단이요, 한 대는 쪼그리고 앉아서 탈 수 있는 썰매로 자동차로 말하면 스포츠카였다. 친구들 앞에서 자랑스러웠다. 쌩쌩 신나게 썰매를 타며 놀았다. 소년은 썰매를 만들어준 매형이 아버지처럼 든든했다.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했다.그런 매형과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매형은 거제도에 있는 한 조선소에서 배를 만드는 노동자였다. 36미터 높이에서 배 만드는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안타깝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11살 때의 일이었다. 그런 매형이 떠났을 때의 소년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리라.소년은 이제 마흔이 넘었다. 튼튼한 썰매를 만들어 주던 매형이 그리울 때면 눈시울이 붉어진다.말은 곧 그 사람이다. 따뜻했던 말이 떠오르면 그 사람과 따뜻했던 추억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 사람을 볼 수 없다면 더욱 그리움이 사무치리라.이 내용은 지난 8. 17일 김재동의 대우조선소 강연에서 한 내용을 편집.재구성하였습니다.[화이팅뉴스는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9-23 07:01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자신의 죽음을, 남편의 죽음을 앞두고 새 생명을 낳는다는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있다.삼십 대 초반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남자. 그의 직업은 의사였다. 죽음을 선고 받았지만 그 날짜는 알수 없었기에 그들은 하루하루 살아나갔다.남자와 아내는 희망을 갖기 위해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아이가 뱃속에서 꿈틀거리며 자라는 동안에도 남자의 고통스런 투병은 계속 되었다.마침내 딸이 태어났다. 간호사가 아이를 건네 주었을 때 남자는 병세가 악화되었다. 추워서 이가 부딪칠 정도로 몸이 차가웠다. 아이에게 차가움이 느껴질까봐 이불로 꽁꽁 싸맨 아이를 안아보았다. 한 쪽 손으로는 아내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쪽 손에서 느껴지는 아이의 무게를 느끼며 삶의 가능성이 부부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그를 떠나지 않고 매일 고통스럽게 했다. 남자는 화학치료로 손끝이 갈라지는 고통 속에서 자판을 눌러 딸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본문 중에서)남자는 나이 서른여섯에 태어난지 8개월 된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비록 짧은 시간을 함께 한 그였지만 그 어떤 아빠보다도 딸을 더 많이 사랑했으리라. 아빠가 딸에게 남긴 편지는 두고두고 딸에게 든든한 힘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의미로 삶을 살고 있는가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는 편지다.  이 내용은 서른여섯 나이에 생을 마친 젊은 의사가 2년 간의 삶의 기록을 담은 <바람이 숨을 쉴 때>(흐름출판.2016)의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9-20 13:07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촉망받는 신경외과 의사가 중병에 걸린 후 2년 간의 삶을 기록한 <숨결이 바람 될 때>(흐름출판.2016)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젊은 의사는 전문의를 앞두고 폐암 말기에 걸렸다. 삶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증세는 날로 심해져 갔다. 부부는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생기면 가족이 제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홀로 남겨질 아내를 위해서였다. 젊은 의사는 서른여섯 나이에 딸이 태어난지 8개월만에 가족들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앞만 보고 달리는데 죽음을 선고 받았을때의 심정은 어떨까.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의 초조와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젊은 의사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조용히 시간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만약 석 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138쪽젊은 의사에게 본업인 의사보다 꿈이었던 작가보다 더 소중한 것은 가족이었다. 우리는 옆에 있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짧은 글 속에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담겨있다. "만약 당신 삶이 석 달만 남았다면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9-20 11:22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비밀번호를 모르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해킹에 대비해 각기 다르게 만들었다가 비밀번호 찾느라 골치를 앓기도 한다. 비밀번호가 넘쳐나는 시대에 페북에 올라온 온가족이 집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특별한 사연이 눈길을 끈다.60대 여인이 있었다. 큰아들이 사는 아파트에 갔다. 벨을 누르니 아무도 없었다. 수첩에 적어 놓은 현관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이 안 열렸다. 요즘은 부모가 오는 것을 꺼려해서 수시로 도어록 비밀번호를 바꾼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속으로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며느리에게 전화했다. 외출 중인 며느리가 말했다.“어머님 현관 비밀번호하고 같아요. 집에 먼저 들어가 계세요. 곧 갈께요.”여인은 반신반의하며 자신의 집 비밀번호인 ‘1**4’를 눌렀다. "딸깍." 걸쇠 풀리는 소리가 났다. 잠시나마 아들며느리를 의심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그러고보니 둘째 아들집도 비밀번호가 1**4다. 건망증이 심해진 엄마를 위한 작은아들의 세심한 배려였다. 여인은 자식집에 편하게 오라는 마음 씀씀이에 눈물이 났다.예전에는 두 아들집 비밀번호가 달랐다. 그래서 늘 수첩 한 구석에 큰아들, 작은아들 비밀번호를 적어놓고 다녔다. 그런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그것도 엄마가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엄마집 비밀번호를 해놓았으까.“열려라 참깨”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오는 마법의 주문이다. 이 말 한마디면 보물이 가득한 동굴의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것이다. 여인에게 결혼한 자녀들의 집비밀번호 공유는 바로 ‘열려라 참깨’와 같았다. 엄마를 배려한 아들며느리의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하다.이 내용은 페북에 올라온 이야기를 재구성하였습니다.[화이팅 뉴스는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8-29 10:55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회장님, 아버지, 이웃집 아저씨, 경찰, 아들, 염전 주인... 어떤 역할이든 부드럽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으로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배우 최일화. 그에게는 오직 연극만을 바라보며 한 우물을 판 남다른 이야기가 있다.그의 어린시절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노가다를 하셨다. 공부로 아버지와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었다. 악착같이 공부했다. 명문대에 합격했다. 당시 돈으로 이 만원이 모자라 등록을 포기했다. 꿈이 무너졌다. 삶이 우울했다.대학 대신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 취직했다. 어느 날, 회사에서 연극을 공연했다. 연극을 보고 난 후 연극을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저게 연기라면 나도 하겠다. 연극 쉽네.”연극을 시작한 지 이삼 년 만에 겨우 대사 몇 마디로 무대에 섰다. 대사도 없이 서는 때도 있었다. 그가 연극을 하면서 주로 들은 말은 연기지도가 아닌 이런 말이었다.“연기 그만 두고 막노동을 하거나 탄광에나 가라.”다른 동료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나가는 동안에도 무대에 남았다. 그것도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주로 연극 포스터를 붙이거나 표를 팔고 카페에 연극전단을 비치하러 다녔다. 연기보다 무대를 꾸미고 소품을 제작하는 ‘일꾼’이나 조수에 가까웠다. 마흔세 살까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희망은 놓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와 잡일로 몸은 피곤했지만 개인 연습을 십 년 넘게 하며 때를 기다렸다. 마음에 분노가 쌓이기도 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서른여덟 살에 동료배우와 늦은 결혼을 했다. 아내가 삼 년 만에 연극을 보러 왔다. 아내는 장미꽃을 건네며 말했다.“자기 연기가 참 편안해.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무대로 옮긴 것 같아. 집에서나 무대에서나 한결 같아.”아내의 인정을 받는 것 같아 행복했다. 그만큼 연기를 자연스럽게 한다는 말로 들렸다. 기쁨도 잠시, 아내가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며 진심이 담긴 말을 했다.“배우는 집에서 말하는 것과 무대 위에서 말하는 게 달라야 하는 거 아냐? 무대에선 연기를 하는 건데 어떻게 평상하고 똑같은 거야.”그는 그날 밤 잠을 못이루었다. 아내의 말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오랜 시간 자신이 쌓아 온 연극에 대한 신앙 같은 생각들을 조금씩 내려 놓았다.쓰레기청소, 상하수도 공사, 도로정비, 지하철 공사장 인부, 십오 년 간 찹쌀떡 장수, 포장마차, 세 번의 탄광촌 인부...그가 배 고픈 연극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했던 아르바이트는 이렇게 많았다.가난한 집안의 장남이고 아이도 있고 아버지도 누워 계시는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늘 맘이 편치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는 선배가 같이 일 하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누군가의 소개가 아닌 직접 방송 작가나, 감독에게 직접 섭외를 받고 싶었다. 수입이 없어 고생해도 낙하산은 싫었다.노력하면 쨍하고 해 뜰날 온다고 했던가. 마흔네 살에 뜻밖의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다. 상을 받고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좋아서가 아니라 가족들을 그동안 고생시킨게 미안해서였다.상을 받고 ‘삼류배우’라는 연극작품에 주연을 맡았다. 최일화를 보러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죽지 않을 만큼 연습했다.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 빠졌다. 이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말했다.“저기 산 송장 지나간다.”연극이 잘 됐다. 영화 감독과 피디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마흔일곱 살에 티비에 데뷔했다. 방송이나 영화에도 출연하며 얼굴을 세상을 알렸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연기와 때로는 부드러운 연기로 때로는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연기자로 대중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그의 빛나는 연기력은 연극이라는 한 우물을 파면서 얻은 다양한 경험과 감성에서 나온 내공이 아닐까. 이 내용은 8월 18일 자 한국일보에 보도된 배우 최일화의 인터뷰를 재구성하였습니다.[화이팅 뉴스는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8-23 16:45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우리나라에는 아기가 태어난지 백 일이면 백일 떡을 만들어 백 집이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다. 이 떡에는 아기가 백 수를 누리라는 부모 마음을 담고 있다. 도시에서 이웃집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파트 생활이 많은 요즘도 백일 떡을 나누는 사람이 있을까. 인터넷에 올라 온 한 아기 엄마의 사연이 훈훈하다.우리 아기가 태어난지 딱 백일. 아기의 건강을 기원하며 떡집에서 백설기를 맞추었다. 양이 많았다. 떡을 언제 다 먹나 한숨이 났다. 이웃집과 나누어 먹고 싶었다. 복도식 아파트에 살지만 이사 온지 얼마 안되어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주는 떡을 좋아할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었다.백설기를 두 덩어리씩 작은 쇼핑백에 담았다. 심호흡을 하고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띵동~”할머니가 문을 열어주었다. 낯선 사람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떡을 드리니 ‘왠 떡이냐.’는 반응이었다. 아기 백일 떡이라고 설명 드렸다.“띵동~”이번에는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총각이 나왔다. 자다 깬 듯, 졸린 눈에 까치머리를 하고 있었다. 떡을 건넸다.사람이 없는 집은 떡을 쪽지와 함께 현관문 손잡이에 걸어 놓았다. 그렇게 여섯 집에 떡을 돌렸다.백 집은 아니어도 이웃집과 나누어 먹었으니 아기가 복 받을거라는 마음이 들어 뿌듯했다.그날, 저녁이었다.“똑똑.”우리집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옆집 할머니였다.“아기 옷인데 맞으려나 모르겠네. 딸인지 아들인지도 몰라서 흰색으로 샀어. 애기 건강하게 키워요."머릿속으로 계산기가 돌아갔다.“그깟 떡이 몇 푼이나 된다고 이렇게 비싼 을 주시다니.”새댁은 오히려 미안했다.“똑똑.”잠시 뒤 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처음 보는 아주머니였다. 옆집 총각 어머니란다. 아기 종이기저귀를 한 보따리 주고 갔다. 다음 날은 집앞에 그림책 몇 권이 있었다. 이렇게 떡을 받은 옆집에서 크고 작은 아기 선물을 주고 갔다.새댁은 그냥 떡을 나누어 먹고 싶었을 뿐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준 떡을 의심없이 받아준 것도 고마운 일인데 이렇게 많은 선물을 받게 될 줄이야. 아기가 복 많이 받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이웃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떡이 아닌 마음을 나눈 것 같았다.그 뒤로 가끔 서로의 문을 두드리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덕분에 아기는 옆집에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도 생겼다. 비록 3명이 사는 가족이지만 이웃이 있어 대가족 같다.떡 하나로 가까운 이웃사촌들이 생겨서 마음이 푸근하다. 앞으로 이웃들과 더 많이 나누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이 사연은 인터넷에 올라온 한 아기 엄마의 사연을 재구성하였습니다.[화이팅 뉴스는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8-19 13:11

▲ 관악 평생학습센터에서 '강원국의 글쓰기' 수업이 진행되었다 (사진=더 리포트)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유명 강사들이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말 잘하는 모습을 보면 한 번쯤 부러운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말을 잘 했을까.<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 작가는 글쓰기 강사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두 대통령을 8년 간 모시면서 연설문을 쓰던 그가 말도 잘하게 된 비법은 무엇일까.그는 말을 못하는 정도가 병에 가까웠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려면 심장이 쿵쿵거렸다. 얼굴이 벌게지고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발표가 공포였다. 물론 친구들이나 토론모임 같은 편안한 자리에서는 말을 잘해서 인간관계에는 문제없었다.그는 대학졸업을 앞두고 발표로 고민이 깊었다. 졸업논문을 교수님과 친구들 앞에서 직접 발표 해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발표 날,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양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취하니 겁대가리가 없어졌다. 달달 외운 논문을 일사천리로 읊었다. 무사히 마쳤다. 사정을 모르는 지도 교수가 한 마디 했다.“강원국, 어젯밤 술을 얼마나 퍼마셨길래 아직도 술이 안 깼냐?”그가 대우그룹에 다닐 때였다. 과장 승진 시험에 합격했다. 교육만 받으면 차장에서 과장이었다. 하지만 교육 프로그램에 들어 있는 '3분 스피치'를 보고 교육을 계속 미루었다. 발표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얼마 후, 회사가 문을 닫았다.문제는 훗날 재취업할 때였다. 차장과 과장의 경력 차이가 무려 4년이었던 것. 고작 3분 스피치를 피한 댓가로 연봉에서 많은 손해를 본 셈이다.고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는 3년 동안 오직 글만 썼다. 말을 안해도 되니 정말 다행이었다.고 노무현 대통령은 토론을 즐겨하는 분이었다. 노무현 정부 취임 첫해, 5월 어느 날이었다. 외부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다.“8.15 경축사를 작성하기 위해 토론자료를 준비해오세요.”설렁탕을 먹다말고 숟가락을 탁 놓았다.‘이젠, 청와대를 떠날 때가 되었구나.’발표를 하느니 차라리 사표를 내고 싶었다.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었지만 발표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사람이 밑바닥에 내려가면 용기가 생기는 법. 망신을 당하더라도 시도해보았다. 먼저 발표 내용을 완벽히 외웠다. 이번에도 몰래 술을 마시고 회의장에 들어갔다. 그에게 대통령과 수석보좌관 그리고 장관들의 시선이 쏠렸다. 얼굴이 벌게지고 손발이 떨렸다. 천장을 바라보면서 술기운을 빌려 외운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했다. 모두 숙연하게 경청했다. 발표를 잘해서가 아니라 발표 모습이 애처러웠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질문도 피드백도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사히 끝났다.한 번이 무섭지 두 번은 쉽다고 했던가. 발표가 조금씩 재미있어졌다. 그 뒤로 인생이 바뀌었다. 지금은 글과 말로 먹고 사는 강사다. 종종 신문에도 나오고 방송에도 출연한다.그는 발표 때문에 고민인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스피치 노하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첫 번째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도를 해라. 두 번째, 발표 내용을 완벽하게 외워라. 세 번째 말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아라. 우리 뇌의 능력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누구나 말을 잘 할 수 있다.”그는 강의를 많이 하지만 여전히 강심장은 아니다. 가끔은 약간의 떨림과 긴장상태를 즐긴다. 마치 청중이 바다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몸을 던지고 물에 뜨는 심정으로 편하게 강의한다. 그러면 청중도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어 준다."말 잘하면 절에서도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은 말 잘하면 강사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시대다. 강사가 꿈이지만 발표 공포증으로 좌절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자신감을 주는 경험담이다.이 내용은 관악 평생학습센터에서 열린 '강원국의 글쓰기' 수업에서 들은 내용을 재구성하였습니다.[화이팅 뉴스는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8-18 15:12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세상이 한뼘 더 따뜻해짐을 느꼈다면 누군가로부터 받은 배려 때문일 것이다. 어려움에 처했던 열 두살 소녀도 그랬다. 한 중고컴퓨터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6학년 딸에게 선물할 중고 컴퓨터 한 대 구해주세요.”중고컴퓨터 가게에 걸려온 전화였다. 수화기의 주인공은 직장 때문에 지방에 따로 살고 한 아이의 엄마였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엄마가 딸을 위해 컴퓨터를 사주려는 것이다. 새 컴퓨터를 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돈이 없어 중고 컴퓨터 가게에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때마침 적당한 중고컴퓨터가 있어서 그 집으로 배달을 나갔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할머니가 손녀를 키우고 있었다. 컴퓨터를 설치하고 22만원을 받았다. 아이는 컴퓨터를 보며 입이 함박만해졌다. 덩달아 컴퓨터 아저씨의 마음도 뿌듯했다.아이는 학원 갈 시간이 되었다. 가는 방향이 같아 학원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아저씨 옆자리에 앉은 아이. 몇 분이 지났을까."아저씨, 저 여기서 내려주세요."아이는 중간에 내렸다. 차를 세우자 문을 열고 건물로 뛰어 들어 갔다. 컴퓨터 아저씨가 언뜻 옆자리를 보니 시트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속으로 생각했다.'예상치 못하게 생리가 시작된 모양이구나.'컴퓨터 아저씨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했다.아내는 생리대와 속옷과 바지를 준비해서 왔다. 그리고 아이가 들어간 건물 화장실로 갔다. 아내가 화장실에서 살펴보니니 문이 계속 닫혀 있는 곳이 있었다.“똑똑”노크를 한 다음 아이에게 준비해 온 물품을 건네주었다. 잠시 후, 아이는 편안한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 흔한 휴대폰도 없던 아이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위급한 상황에서 나타난 처음 보는 아줌마가 천사처럼 보였을 것이다.아내는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듣더니 컴퓨터 대금 중 10만원을 돌려주라고 명령했다. 컴퓨터 아저씨는 10만원을 잘못 받았다며 할머니에게 환불해드렸다. 사실은 큰 손해를 감수한 일이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장사를 하는 것인데 오히려 목돈이 나가다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그날, 저녁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고맙습니다. 아이한테 이야기 들었습니다.”아이 엄마의 말에는 고맙고 미안한 눈물이 묻어 있었다.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큰 손해를 본 하루였지만 마음만은 부자가 된 날이었다.배려는 교과서에서 배운다고 되는게 아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것이다. 행동으로 실천한 컴퓨터부부의 이야기가 더 가슴 찡하게 전해지는 이유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8-16 13:07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길냥이 밥을 주거나 유기견을 보듬는 사랑이 많은 감동을 안겨주지만, 길가에 핀 꽃을 돌보는 이를 발견했을 때의 감동은 차원이 다른 힐링을 가져다 준다. 시루떡 찌는 듯한 무더운 날씨가 계속 되고 있었다. 8월 11일 오후 2시쯤이었다.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에 있는 작은 빌라 앞. 한 아주머니가 주차된 자동차와 빌라 담 사이에 끼어 있었다. 망부석처럼 서 있는 모습에서 작은 손놀림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아주머니가 여리디여린 나팔꽃 순을 철조망에 감고 있었다.차가 주차되어 있어 사람들 눈길이 닿지도 않는 담. 누가 거기 핀 나팔꽃을 본다고 이 더운 날, 저리도 정성을 쏟고 있는 걸까.아주머니는 여린 나팔꽃 덩굴이 도로로 뻗어 차에 짓밟힐까봐 걱정되었으리라. 그래서 나팔꽃 덩굴을 가시철조망에 감아주고 있었다.  콘크리트로 덮인 도시에서 자생하는 나팔꽃을 보는 일은 여름 날 소나기처럼 반가운 일이다. 아주머니도 작은 나팔꽃이 사랑스러워 자식 돌보듯 했으리라.기형도 시인은 시에서 겨울에게 겸손을 배웠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여름에 무성하게 뻗는 나팔꽃에게 작은생명의 소중함을 배운 건 아닐까.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8-15 11:16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길거리에서 파는 어묵 한 꼬챙이. 서민들의 간식이고 때로는 한 끼 식사다. 이뿐이랴, 잊지 못할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다. 인터넷에는 한 청년이 올린 '10개의 어묵'이라는 어묵에 담긴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어느 해 겨울밤의 일이었다. 당시 청년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고시원에서 살면서 낮에는 막노동을 하고 밤에는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다. 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 어둠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였다. 순간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그러나 주머니에는 달랑 동전 몇 개뿐.“아주머니, 어묵 한 개만 주세요.”청년은 어묵을 한 개만 먹고 많은 어묵 국물로 배를 채울 생각이었다. 어묵 아줌마가 이를 눈치챈 걸까. 청각장애인이었던 아줌마는 글씨를 써서 내밀었다.“여기 남은 어묵 다 먹고 가요. 어차피 퉁퉁 불어서 내일은 팔지도 못할거야.”청년은 오뎅 10개를 허겁지겁 먹었다. 오랜만에 배부른 저녁을 먹었다. 그 뒤로도 가끔 불은 오뎅을 얻어 먹었다.  6년이 지났다. 청년은 그동안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도 졸업했다. 취직도 했다. 문득 고마웠던 어묵 아줌마가 떠올랐다. 그 곳에 가보니 아줌마가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었다. 옆에는 뇌성마비 장애인 아들이 있었다. 서른이 넘었는데 취직할 곳이 없어 아줌마 장사 돕고 있었다.대기업에 다녔던 청년은 장애인을 고용하는 계열사에 아줌마 아들을 취직 시켜주었다. 아줌마는 환한 미소와 함께 글씨를 써서 감사함을 표현했다."그깟 어묵이 뭐라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요."청년은 말했다."옛날에 어묵으로 빚 졌잖아요. 이제 빚 갚는거에요."  어려울 때 힘이 되었던 사람은 평생 못 잊는 법. 청년은 마음 속에 항상 어묵을 잊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잊지 않고 찾아와준 어묵청년의 마음도 훈훈하다.인터넷에 있는 '오뎅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재구성하였습니다.[화이팅 뉴스는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8-10 06:52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한 임산부가 사회관계통신망(SNS)에 올린 택시기사님 이야기가 감동을 주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저는 임산부입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습니다.떼쟁이 3살짜리 아들까지 데리고 외출하는 날이면 몸은 파김치가 됩니다. 버스 타는 날은 마음까지 불편합니다. 임산부가 아이까지 데리고 타면 눈치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임산부라서 자리를 양보 받는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한 번은 버스기사님이 대놓고 이런 말도 하더군요.“아줌마, 애 데리고 버스 타면 위험하니까 택시 타고 다니세요.”누가 모르나요? 택시 타면 편하고 안전하다는 것 잘 압니다. 허나 돈이 왠수지요. 빠듯한 살림에 한 푼이라도 아껴보겠다고 꿋꿋이 버스 타고 다닙니다.어느 날은 아이 데리고 걷기도 힘들고 버스 타기도 힘들었습니다. 큰맘 먹고 택시를 탔지요.60대의 택시기사님은 인상이 좋아보였습니다. 그는 부처님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 아이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들에게 5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맛있는 거 사먹고 건강하게 커라.”저는 깜짝 놀라서 손사래를 쳤습니다. 기사님은 지갑을 보여주면서 말했습니다.“손님 중에 아이가 2명 이상이면 이 돈을 준답니다. 요즘 애들 보기가 어려운데 만나면 반가워요. 손주 용돈 주는 마음이에요.”가족도 아닌 분이 용돈을 주시다니요. 부담스럽긴 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택시기사님의 배려는 육아에 지친 제게 너무나 큰 위안이 되 주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절벽 시대에 접어들어 걱정이랍니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이유가 많습니다. 아이 많이 낳으라고 외치기 전에 임산부들 일상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를 해준다면 어떨까요.이 이야기는 페이스북에서 본 내용을 재구성하였습니다.[화이팅 뉴스는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8-08 16:17

[더 리포트=이수진 기자] 사람들은 길에서 지갑을 줍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꿀꺽하거나 신고하거나. 돈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돈을 돌처럼 여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잠시 돈의 유혹에 흔들렸던 경험을 털어 놓은 진솔한 이야기가 있다.임OO씨는 20년간 마포 구석구석을 누비며 막걸리 배달을 하고 있다. 덕분에 눈 감고도 다닐 수 있는 베테랑 운전수다. 길눈이 밝다보니 어쩌다 지갑을 줍기도 한다. 물론 모두 돌려주었다.지난 겨울에도 지갑을 주웠다. 서울역 뒤쪽 충정로 골목길에서 반지갑을 주웠다. 주인에게 돌려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였다. 언젠가 주위 사람들에게 들은 이런 말이 떠올랐다.“지갑에 있는 돈을 뺀 다음 지갑만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그래도 고마워한다.”순간, 아무도 본 사람도 없는데 지갑만 우체국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돈에 대한 유혹이 들자 가슴이 방망이질을 했다. 누가 볼세라 차에서 지갑을 열었다. 지갑에는 현금 40만원이 있었다. 돈을 보니 중2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장표 파카를 입고 다니는 아들에게 요즘 유행하는 메이커 파카를 사주고 싶었다.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시 지갑을 열었다. 명함을 보니 고물상 대표였다. 그 옆에는 10장의 헌혈증서와 사랑의 장기기증증서가 있었다.순간 부끄러웠다.“고물상 주인이 이런 좋은 마음을 갖고 사는데 나는 한평생 헌혈 한 번 안했는데...”임OO씨는 지갑 주인을 찾아갔다. 지갑주인은 대낮인데 어묵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마 지갑을 잃어버려 속상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으리라. 지갑주인은 지갑을 받자마자 3만원을 꺼내 내밀었다. 순간 부끄러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집으로 오는 길,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음 속으로 한 시간 동안 범죄를 저지른 기분이었다.임OO씨는 말한다.“내 힘으로 힘들게 벌어서 아이들 따뜻하게 입히고, 마음 편하게 식탁에서 오순도순 얘기하며 식사하면 그게 행복이다."MBC 라디오 '여성시대' 2014년 12월호에 실린 임호삼씨 사연을 재구성하였습니다.[화이팅 뉴스는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의 향기 | 이수진 기자 | 2016-08-08 12:30